"다시 군생활을 시작할 때는 정말 깜깜했는데, 이제는 새 인생을 살아야죠". 25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파동 대구경찰청 소속 608전경대 내무반. 동료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이병일(37) 수경의 아주 특별한 전역식이 열렸다.
21세인 지난 88년 부산 53사단에 입대한 지 16년 만의 전역식이다.
이 수경은 당시 신병 교육을 마치고 전투경찰로 대구경찰청 기동대 1중대(현 608전경대의 전신)에 배치됐는데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2차례나 탈영, 모두 14년 간을 숨어지내다 자수해 이날 복무를 마쳤다.
이 수경이 처음 탈영한 것은 부대 배치 6개월 만인 지난 88년 12월31일.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절, 그는 몸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내무반 생활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탈영을 했고, 2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 친지의 권고로 자수해 서울경찰청 제 2기동대로 편입됐다.
하지만 역시 견딜 수가 없어 3일만에 또다시 탈영, 2002년까지 무려 12년간이나 '도피자'로 지내야 했다.
이 수경이 자수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아들 때문. "도피 생활 중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나 혼인신고는 물론 하지 못하고 아들 호적까지도 집사람 앞으로 했다"며 "이 때문에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행정 처분의 시효가 끝났다'며 대구경찰청 608전경대로 원대 복귀 명령을 내렸고, 조리사인 그는 이후 만 19개월 동안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이 수경은 아내가 갑상선 항증진이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어 자수 결심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전에 자수를 하려고 했지만 내가 없는 동안의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자수가 늦었다"며 "복귀 후에도 휴가나 특박이 나오면 일을 해 생활비를 근근이 마련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수경은 원대 복귀 후 나온 첫 휴가때 동사무소로 달려가 혼인신고를 하고 아들 호적도 정정했다. 608전경대 정기준 대장은 "나보다 한살이 많지만 너무 성실하게 군생활을 했다"며 "늦은밤 간간이 소주잔을 기울였지만 마음이 아플까봐 서로 가족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수경은 탈영 후 새로 시작한 군 생활이지만 성실한 복무 자세를 인정받아 지난해 경찰의 날에는 경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날 뒤늦은 전역증을 들고 서울의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들은 아빠가 외국에 일하러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너무 늦었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새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 시절 병영에서의 단체 생활을 통해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휠씬 많은 것 같다"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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