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인도에서 온 편지

H형, 지난 여름 함께 다니던 인도는 지금도 엄청난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형이 명상에 잠긴 채 못내 발길을 돌리지 못하던 갠지스에는 오늘도 어둠이 걷히고 나면 또 다른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어둠이 지나고 빛이 나타나듯이, 그리고 죽음 뒤에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이 있듯이, 갠지스 강가의 가트에서는 새로운 태양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새벽 여명은 아침 햇살을 받아 어느새 주홍색으로 변해 있습니다.

지금도 갠지스에는 밤새 화장된 시신이 버려진 물에 얼굴을 씻으며 무언가를 소원하는 노인과 강물에 꽃잎을 던지는 아낙네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갠지스의 성스러운 물에 몸을 적셔 자신들의 죄를 씻고자 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그 강물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갠지스 강가에서의 이 모든 풍경들은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고귀한 의식(儀式)으로 보여지기도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과 사고를 상실한 인간들의 광란의 몸부림으로 보여지기도 하지요.

H형! 갠지스 강에서의 목욕으로 지상에서 지은 우리들의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의 육신이 한줌의 재가 되어 갠지스 강에 뿌려진다면 지상의 모든 윤회(輪廻)를 해탈하고 영원으로 초월할 수 있을까요?

갠지스가 있는 바라나시 근처에는 부처가 최초로 설법을 한 사르나트라는 불교성지가 있지요. 부처님은 이곳에서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업보(業報)이며 윤회임을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인간의 업보, 즉 카르마(karma)가 다음 생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구경과 화엄경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전생과 내세의 의미는커녕 현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어떠한 깨달음도 얻을 수가 없네요.

H형! 영혼으로 충만한 바라나시의 여신은 오늘도 광란의 갠지스 강을 무심히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허상문(영남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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