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야수정'(수성구 상동)과 '첨모재'(달성군 옥포면)란 것을 시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두 건물은 모두 1900년경 세워진 것으로, 각각 진씨(秦氏)와 성주 배씨(星州 裵氏) 문중의 재실이다.
그렇다면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사와 최초의 상수도 시설은 무엇일까? '반야월역사'(동구 신기동)는 1932년 건립된 가장 오래된 역사이고, '가창수원지'(달성군 가창면)와 '대봉1호 배수지'(중구 대봉동)는 1918년 준공된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다.
우리는 외국의 역사에는 관심을 쏟으면서, 정작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산업화 물결 속에서 오래된 교육·의료·종교시설을 비롯해 역사·인물유적 등 문화유산은 점점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점차 잊혀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이미 옛 대구역을 비롯해 대구공립보통학교 본관, 계산성당 사제관, 대구공소원, 대구 복심법원, 대구공회당 등 대구의 근대 문화와 역사를 담은 건물 상당수는 이미 사라졌다.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상징물이 줄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대구시는 최근 근대문화유산의 실태파악과 보존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가톨릭대박물관과 함께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조사보고서'를 냈다.
여기에는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60년까지의 주요 근대문화유산 134건의 목록과 현황이 담겼다.
교육·집회·의료·종교시설 등 건물 93건, 교량·댐 등 산업구조물 19건, 시장·골목 등 생활문화유산 8건, 역사 및 인물유적 14건 등이다.
1914년 건립된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구관'(중구 남산동)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혼합된 근대건축으로, 대구 천주교 역사를 담은 주요 건물이며, '관음사'(중구 삼덕동)는 1927년 건립된 목조 단층건물로, 일본식 사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조양회관'(동구 효목동)은 1922년 항일 민족주의자 서상일이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건립한 것으로, 현재 광복회 대구·경북지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주거 건물로는 1904년 건립된 동구 미대동 채효기씨의 주택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세기 초 과도기적 주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인물유적으로는 '이상정 장군 생가'(중구 계산동) '서상돈 고택'(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중구 계산동) '문창공 영당'(동구 도동) '모명재'(수성구 만촌동) 등이 있다.
문창공 영당은 신라때 문장가 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사묘이고,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왔다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진골목'(중구 남일동) '약전골목/약령시'(중구 남성로) '서문시장'(중구 대신동) '교동시장'(중구 교동) 등은 대표적 생활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전통 한옥과 근대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진 진골목은 1907년 '패물폐지부인회'의 활동장소다.
당시 남일동의 부인들은 국채보상운동이 남성 위주로 전개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패물폐지'로 전국 여성들이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
약전골목/약령시는 1658년 경상감사 임의백이 경상감영 안에서 1년에 두 차례씩 약제시장을 개설하던 '약령시'에서 유래됐으며, 대구읍성이 철거된 뒤 1908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서문시장은 조선후기 대구읍성(서문네거리) 서문 자리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다 1922년 천황당 못을 메운 터에 자리잡았고, 교동시장은 1950년대 초 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PX물품이 거래되면서 시장으로 형성됐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사진: 중구 종로2가에 있는 화교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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