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등학교 시험

초등학교 저학년생부터 점수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치르는 '일제고사' 등으로 아이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 더구나 학부모들의 과도한 욕심 탓에 아이들은 시험 기간이 되면 적어도 서너 권의 문제집을 풀어야 하고, 학원에서 특별 보충수업을 듣는 등 그야말로 시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 학교시험 얼마나 치르나

현재 대구 교육청이 주관해 치르는 '학력평가'는 사라졌다. 전교조 등 교육관련 단체들의 반대로 대구의 모든 초등학교가 일제히 치르는 시험을 폐지하고 '수행평가'와 학교별 고사 등을 통해 아이들의 실력을 평가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외견상일 뿐, 여전히 일제고사는 치러지고 있다. '교장단 협의회'의 결정을 통해 90% 가량의 학교가 같은 날, 같은 시험문제를 가지고 일제히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

임성무 도원초교 교사는 "1학기의 경우 3월 진단고사를 시작으로 매달 1차례씩 시험을 치러 한 학기동안 모두 5번의 시험을 봐야 했다"며 "2학기 들어서는 중간'기말고사 2회로 줄어들었지만 학생들은 잦은 시험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는 지경"이라고 했다.

▲ 학부모들의 과열된 경쟁의식

문제는 '내 아이는 앞서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욕심이다. 박근자 교동초교 교사는 "일부 학부모들의 경쟁 의식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내 아이가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학부모들이 학교측에 시험을 치르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종합학원 수강은 물론 한 달에 서너 권의 문제집을 푸는 것은 기본이 됐다. 수성구 한 초등학교에서는 한 학급 35명의 학생 중 20명 이상의 학생이 만점을 받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모(38)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에게 시험을 앞두고는 하루에 5시간 가량 문제집만 풀도록 했다"며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두 문제만 틀려도 반에서 꼴지 수준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시험 날이 다가오면 학원 가에서는 주말 특강을 개설하고 하루 종일 학생들을 붙잡아두고 있다.

▲ 과도한 문제집 풀이, 오히려 학습 방해 될 수도

교사들은 문제풀이를 통해 성적을 올릴 수는 있지만 너무 문제풀이에만 취중하다보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오히려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질문의 문항을 계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정답을 골라내고 외우는데만 익숙해져 이해력과 사고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박근자 교사는 "출판사들이 내 놓는 문제집의 대부분이 기존에 시행됐던 일제고사 시험문제를 그대로 베껴서 만드는 데다 단순한 문답식으로만 채워져 있어 학생들의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임성무 교사도 "정답 찾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학생들의 '창의력'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많은 문제를 접하기보다는 한 문제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관련된 배경 지식과 함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과연 일제고사만이 능사일까

전교조에서는 '일제고사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한날 한시에 일괄적으로 모든 학교가 경쟁하듯 시험을 치르는 것은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외에는 별다른 교육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전교조 관계자들은 "교사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있지만 교사별 평가와 수행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학부모와 교장이 담임 교사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무 교사는 "지난 14일 치른 시험에서 교직생활 19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문제를 출제해 학생들을 평가해 봤다"며 "기존 문제와는 유형이 달라 학생들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출제하고 빠진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했다.

또 그는 "시험 횟수를 줄이고 '수행평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보고서 제출 형태의 '수행평가'에서 탈피, 학생의 학습 능력을 올바로 측정한다면 지필 고사를 통한 학습능력 평가보다 더 많은 것을 학생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이미 학생들은 점수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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