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렇게 살아요-의성 원당3리 사람들

'아흔살 노인도 상일꾼' 장수마을

"우리 마을은 아흔살 노인도 상일꾼으로 불릴 만큼 건강해 모두들 부러워한답니다.

"

대구에서 의성군 의성읍 진입도로를 따라 가다 만나는 첫번째 마을인 의성읍 원당3리 속칭 '다릿골'은 평범한 농촌마을이지만 이 마을만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60여 가구 150여 명 주민이 대부분 야산 허리 청석바위 위에 둥지를 틀 듯 옹기종기 붙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노인들은 그래서 마을의 모습을 보고 '제비허리'라고 부른다.

마을엔 사연도 많다.

마을 앞 동쪽으로는 구봉산이 가려져 있고 마을을 에워싸며 서 있는 뒷산이,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옥비녀와 옥빗을 뜻하는데, 금비녀에 옥달빗이라 해서 과거에는 '달빗골'이라 했다는 것.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며 음이 변해 지금은 '다릿골' 또는 '교동'으로 불린다.

팔순 넘은 노인들은 동쪽에 흐르는 내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하여 '다릿골'로 부른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특별한 일거리와 소일거리가 없는 한 마을 대부분의 노인들은 마을 경로당에서 보낸다.

특히 강귀분(89), 김기술(85), 이근수(77) 할머니는 거의 매일 찾아오는 단골손님. 365일 늘 함께 하는 이들은 바로 동서지간.

중간동서인 김 할머니는 맏동서에게 "우리마을에서 가장 고추를 잘 따는 사람"이라며 "고추따기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일등할 것"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옆에 있던 이덕인(89) 할아버지도 "고추 따는 일은 강 할머니를 따를 사람 없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맏동서인 강 할머니는 "요즘은 귀도 어둡고 눈도 어두워 고추를 잘 따지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은 한결같이 강 할머니가 고추 따는 데는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중간동서인 김 할머니는 또 아랫동서인 이 할머니에게 손짓하며 "이 마을에서는 과수원 등 토지가 많은 부자 "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맨 아랫동서인 이 할머니는 정작 과수원을 포함한 자기네 땅이 몇 평인지 잘 모른다고 해 좌중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으나, 마을에서 땅이 가장 많은 부자임은 부인하지 않았다.

세동서 중 입담이 가장 좋은 김 할머니는 이어 마을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 한 가지를 소개했다.

옛날 읍내의 어떤 불효자가 늙은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다릿골 안 골짜기에 버리고 왔는데 어린 아들이 지게를 받아 감나무에 동여 매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어린 아들은 '이 지게는 잘 보관해 두었다가 아버지가 늙으시면 제가 아버지를 지고 가서 버려야 될 게 아닙니까?'라고 했다.

이에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감동한 아버지가 다시 노부를 집으로 되지고 왔다 하여 '뒤짓골'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는 것.

김 할머니에게 남편인 권성학(91) 할아버지의 근황을 묻자 "비록 나이는 구십을 넘겼지만 오늘도 자전거 타고 읍내에 나갈 정도로 건강은 젊은 사람들 못잖다"면서 "아직도 마을에서는 상일꾼으로 통할 만큼 못하는 농사일이 없다"고 자랑했다.

이덕인 할아버지도 "권 할아버지는 요즘도 일철에는 과수원의 적과(열매솎기) 등을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라며 "우리 마을에서는 놀고 먹는 노인들이 한 사람도 없다"면서 대대로 내려오는 장수 마을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이 할아버지는 또 "경로당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농으로 '할아버지는 어디 갔나?'고 물으면 '콩 팔러 갔다' '깨 주으러 갔다'고 하는데 이는 '먼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라고 해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윷놀이 하는 어르신 틈에 끼어 세 동서할머니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벌써 해질녘이 됐다.

작별인사를 하니 "다음에 오면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 테니 오라"며 작별을 아쉬워한다.

시간이 멈춘 듯 주민들 간 옛정이 소록소록 살아나는 곳인 듯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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