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 3, 2, 1, 와~."
전세계 비즈니스의 심장인 미국 뉴욕의 신년맞이 카운트 다운은 종종 영화의 한 장면으로 삽입될 만큼 많은 관광객과 뉴요커들로 붐빈다. 그만큼 정초와 크리스마스 시즌은 비즈니스마케팅에서 중요하다. 각종 음반과 선물용품, 그리고 파티복들이 단대목인 크리스마스에 맞춰 출시되고, 각 백화점들은 최고의 상품을 전시하여 세계 이목 끌기에 혈안이 된다. 지난 연말연시, 뉴욕의 최고 번화가인 5번가에 한국의 패션유학생이 '눈(雪)'의 이미지를 담은 이브닝드레스 한 벌로 미국 상류사회의 마음을 훔친(?) 사건이 발생했다. 맨해튼 핍스 애비뉴(5번가) 일류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스물네 살의 대구 청년 정승용군.
◆ 맨해튼가 작품 전시에 몰려든 인파
맨해튼가의 최고급 백화점이 주최하는 '삭스 핍스 애비뉴 공모전'의 수상자 6명 가운데 정군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시즌에 전시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말하자면 최고 작품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알마니 샤넬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명품이 전시되는 대형 쇼윈도에서 수상작(사진)을 전시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작품에 대해 묻고 함께 사진 찍느라 정신없이 바빴어요."
유명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파티에도 초청받았고, 뉴저지의 패션컴퍼니와 인터뷰를 했다. 연봉 1억 원에 계약을 맺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3월에 젠 아트 콘테스트에 출품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디자인 공부를 더할 겁니다."
젠 아트에 출품할 의상의 소재를 구하기 위해 세계 10여 개 천 시장을 둘러볼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정군은 유명디자이너 도나카란과 마크 제이콥스, 중국계 미국 디자이너 안나수이, 영화 배트맨의 조마엘 슈마허 감독 등을 배출한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졸업반이다.
◆ 하루에 3, 4시간 이상 잔 적 없어
파슨스디자인스쿨은 '끝이 보이지 않는 대학' 혹은 '밤이 없는 학교'이다. 그만큼 교육과정이 혹독하고, 무슨 티끌을 잡아서라도 재학생의 70%를 솎아낸다. 디자이너로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격전장이다. "하루 서너 시간 이상 잔 적이 없습니다."
오는 5월 파슨스를 졸업하면 21세기 패션도시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런던의 세인트 존 예술학교에서 디자인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다. 정군이 가장 존경하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도 세인트 존 대학원을 나왔다. 아직 정군은 미완의 대기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정군은 과학적인 머리와 예술적인 끼를 동시에 지녔다. 소년시절, 클라리넷, 플루트, 리코더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고, 리코더 연주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음악을 택하고 싶었다. 능인중 수석이던 정군이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하자 집안에서 "공부를 하라"며 반대했다. 불투명한 길 대신 미래가 보장된 엘리트 코스로 가라던 것.
◆ 과학고를 나와서 디자이너로
단식투쟁을 벌였으나 아버지(정흥식·성서공단 광명정공 대표)도 같이 단식을 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할 수 없이 대구과학고를 다녔다. 그러나 고교 시절 내내, 대구시가 추진중인 밀라노 프로젝트 얘기만 들렸다. 밀라노 프로젝트를 살리려면 뛰어난 소재 생산과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융합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디자인에 대한 목마름이 심해졌다. "결국 여름방학 때 어학 연수를 가서 디자인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제조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마케팅 개념을 자연스레 익힌 정군은 유행을 창조하는 곳은 유럽이지만, 그 유행을 세계적으로 상품화하는 곳은 미국임을 감안, 합리적으로 뉴욕행을 택했다. 뉴욕에서는 패턴을 중시하는 FIT보다 디자인을 강조하는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지원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디자이너의 길. 현지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왕따를 자처했다. 고독한 유학생활이 계속되었다. 천 가게를 하는 한국인 주인은 한국말을 쓰지 않는다고 스와치(자투리천)도 주지 않았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성
"2학년 땐가, 너무 아파서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말 대신 눈물만 쏟아졌어요."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끌어 올랐지만 참았다. 아버지의 반대를 알기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걱정하실까봐 말씀은 못 드렸지만 그동안 여러 번 콘테스트에서 떨어졌어요. 3학년 때는 갭(Gap)에서 작품전에서 30위 안에 들기도 했어요." 정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콘테스트에서 떨어져도 되돌아보면 이만큼 실력이 나아졌구나 하는 성취감이 솟아났어요."
사실 떨어지고 실패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패를 하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향해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강한 미국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여 대공황을 이겨냈듯이 정군 역시 두려움을 털면 기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 바느질할 때 묘한 떨림에 흥분돼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여인의 흰 이브닝 드레스(사진)를 실크벨벳과 털, 그리고 크리스털로 표현한 정군의 작품은 세계적인 액세서리 메이커인 스왈롭스키와 사가모피가 협조했다. 60억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디자인계에서 대구 청년 정군은 유례없는 대박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천을 자를 때의 사각거림과 재봉틀을 돌릴 때의 달달거림, 그리고 바느질할 때의 기분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정군이 예술적인 끼와 수준 높은 공부를 통해 세계 속의 리딩 디자이너로 발돋움하기를 대구 패션디자인계는 바라고 있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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