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전쟁터다.
연출자, 출연자, 작가, 촬영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등 적게는 수 명, 많게는 수천 명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방송 시간과 싸우며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 중 방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대본을 쓰는 방송작가는 전략의 밑그림 위에 갖가지 색깔을 입히는 전술 참모와 같다.
화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들은 프로그램의 내용과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방송작가들의 삶은 일반인들과의 '환상'과는 많이 다르다.
대부분 신분 보장이 안되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방송작가들 대부분이 20~30대일 정도로 작가 수명이 길지 않은 이유다.
13년째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는 이송평(39)씨는 지역 방송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40대를 바라보는 남성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가 방송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1992년. KBS대구 라디오에서 아르바이트로 '석간뉴스브리핑'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이씨는 전국연극제에 3번이나 참가했을 정도로 연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1990년 극단 처용의 '진혼곡'과 1992년 극단 온누리의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는 연기자로 전국연극제에 참가했고, 1994년에는 당시 대구에서 최장기 공연을 했던 여성 모노 드라마 '자기만의 방'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1993, 1994년에는 대구연극협회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마지막으로 연극무대를 떠났다.
"연극을 할 때 가장 즐거웠어요. 온 몸에 에너지로 넘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 연극에 대한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죠."
방송 작가로 뛰어들었지만 이씨는 한 가지 영역만 고집하지 않았다.
라디오DJ, 리포터, 작가, 다큐멘터리 연출 등 다양한 장르로 손을 뻗치며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1994년 대구MBC 라디오 창사특집 '대구를 아십니까'의 진행을 맡기도 했고, 1995년에는 토요일 오전에 방송되는 여행 정보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활약했다.
현재 대구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토요일 오후 5시에 방송되는 '다큐세상, 이웃'에서 직접 취재와 대본 집필·연출을 맡고 있기도 하다.
"프리랜서는 자신의 영역을 굳게 확보하거나 발전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고 도태되는 직업입니다.
살벌한 방송계에서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댔던게 프리랜서로서 오래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죠."
이씨에게는 지난 2000년 개국한 대구교통방송에서 1년동안 '달구벌 야화'라는 프로그램의 작가를 맡았던 기억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당시 매주 한 번있는 녹음을 위해 1주일치 원고를 한꺼번에 썼는데 보통 원고지 500장 분량이었다.
하루에 60~70장씩 써 내려간 셈. 장편소설 한권이 보통 원고지 1천500장 내외인것을 감안하면 한달에 장편 소설 1권이 될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다.
"보통 사흘 정도 자료를 수집하고 나흘은 집필했어요. 이런 생활이 1년동안 계속됐죠. 숨 돌릴새 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대구라는 도시를 완전히 해부하면서 대구를 더욱 사랑하게 됐죠".
이씨는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댔지만 여기에도 하나로 모이는 접점이 있다고 했다.
"한 가지 분야가 다른 분야에 골고루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우리 사회를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치학을 공부하면 다큐멘터리를 만들때 사안에 대해 폭넓게 접근할 수 있게 되죠."
그에게 있어 방송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그가 앞으로 지역 정치와 사회 현안을 다루는 토론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은 이유다.
"연명한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스스로의 수준을 높여야겠죠. 후배들에게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을때 방송을 떠나겠지만 앞으로도 10년은 더 방송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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