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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승하고 아시안리그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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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지 오늘(21일)로 83일째인 김응룡(金應龍, 65) 사장의 하루는 촌각을 다툰다. 라이온즈 연고지인 대구를 비롯하여, 서울, 외국 등지를 오가며 전혀 새로운 버전의 야구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해야할일이 태산같기 때문이다. 구단 CEO가 된 이래 역내외 기관단체장 모임을 비롯하여 언론인터뷰. 지역사회 봉사, 대구시민과의 만남 등에서 신기할 정도로 유연하고 자신감 있는 적응력을 보이는 김 사장에게 보여주는 대구시민의 신뢰와 환호는 열렬하다. 그만큼 그가 지역사회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정도 각별하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KBS 수요기획팀과의 취재여행인 백두산 등정을 위한 출국(20~23일)을 앞두고도 바로 서울에서 뛰어내려왔다.

◆ 올해 우승하고, 아시안 리그를 만들어야죠

"내 꿈은 일본 중국 대만과 함께 아시안 리그를 만드는 거요. 그럴러면 삼성라이온즈가 우승해야되는데 나보다 훨씬 잘하는 선(동렬)감독이 있으니 (우승)할거요."

선수, 감독에 이어 프로구단 사장으로서 야구 인생 3막을 서기롭게 펼치고 있는 김응룡 사장의 꿈은 코끼리 승부사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그의 덩치만큼이나 거대하다. 목표가 한반도가 아니라 아시아다.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그를 계기로 아시아 4개국이 붙는 리그전을 창설하려는 것이다.

"그럴려면 라이온즈의 우승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먼저 야구장을 찾는 관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도록 해야돼."김 사장은 우리나라 팬들이 이기는 시합만 보려고 하고, 지면 외면해버려서 야구 기반이 든든하지 못한 점을 감안, 재미있는 시합, 이기는 경기로 대구시민을 야구장으로 끌어당길 예정이다.

◆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그날을 위해

사장에 취임하고 김 사장은 사택을 선수단 숙소가 있는 경산 볼파크로 옮기고, 구단 사무실도 서울에서 대구로 옮겼다. 그만큼 현장을 중시하는 지역밀착형 야구 CEO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야만 병풍비리, 상승세의 축구, 이승엽 일본행 등으로 자꾸 위축되는 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다시한번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거기에 관중을 단 한명이라도 더 야구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다.

최근에는 2군사령부 사령관을 찾아가서 모범적인 군생활을 하는 군인을 야구장으로 포상휴가를 보내달라고 요청,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지난 연말에는 김사장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김장(1천포기)을 담가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용기를 북돋웠고, 배영수 양준혁(동구) 등 선수들을 대구시내 8개 구군 홍보대사로 파견, 지역일에 앞장서게하는 스타마케팅도 도입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본사가 주최한 재경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도 참석했다가 막차로 대구로 내려와 이튿날 조찬모임에 참석하는 정열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의 평균 입장객은 5천명인데, 적어도 8천명은 들어야해."

◆ 프로구단이 있어야 도시의 경쟁력 생겨

김 사장은 외국처럼 프로구단이 있는 걸 그 도시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많은 혜택도 주기를 소망한다. 실제로 대구시에서는 프로구단들을 돕기 위해 올해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축구 교차할인제(한 경기를 보면 그 표로 다른 종목의 경기를 20% 할인해서 보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고, 타시도 보다 비싼 구단 사용료도 좀 깎아주기 위해 조례를 개정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그 도시에 프로구단이 있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수많은 도시에서 첨단 시설물을 갖춰주겠다며 유치경쟁을 벌여요. 프로구단이 있다는게 그만큼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이죠"

김 사장은 외국에서는 시장 출마자가 5만명, 10만명을 수용하는 큰 운동장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프로구단 유치경쟁을 벌이고, 프로구단이 적자를 내면 연고도시에서 세금을 면제해주는게 부럽다. 대구처럼 50년된 낡은 시민운동장에서, 주차장도 없는 불편한 야구장에서 경기를 봐야하는 것은 빨리 시정돼야한다고 본다. "야구한번 보는데 입장료 5천원, 주차료 1만2천원, 거기다 20분간 걸어서 입장해야하니, 말이나 돼요?"

◆ 요미우리도 야구전용구장의 주식 15% 갖는 선

그렇다고 삼성 라이온즈가 전용구단을 구장을 짓는다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주주들의 허락도 받아야되고.... 미국이나 일본도 전용구장을 갖기는 힘들어요. 일본의 요미우리가 겨우 전용구장 주식을 15% 정도 갖고 있죠."

최소한 관중이 3만명 이상 들어올 수 있는 스텐드를 가진 운동장이 있어야된다는 김사장은 주차장이 딸린 새 야구장을 시에서 지어주기를 바란다. "외국의 경우 프로야구의 수입원이 입장료, 주차료, 식음료 판매수익으로 3등분된다"는 김 사장은 4차례나 유찰된 대구시민운동장 구내 매점을 삼성에서 직접 운영, 대구시민을 위해 맛있고 안전한 음식을 싸게 공급할 예정이다. "외국에서는 시합날 게임도 즐기지만 그 구장에서만 파는 독특한 핫도그, 햄버거를 찾는 사람도 많아요." 올해부터 맛보게 될 라이온즈 표 핫도그 햄버거는 어떤 맛일까.

◆ 처절한 극기정신이 라이온즈 사장 발탁 배경

감독시절, 말이 별로 없고, 성질나면 구장에서 의자를 던지는 것도 불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 승부사 김응룡이 삼성라이온즈 CEO로 발탁된 배경은 단순하다. 그것은 지독할 정도로 원리원칙을 따지며, 줄서기 대신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정도(正道) 정신으로 평생 살았기 때문이다.

원정경기가 많은 야구 속성상 김 사장은 삶의 10분의 9는 타향에서 혹은 합숙하며 살았다. 하고한날 집을 떠나 있어도 딴짓은 없다. 오직 운동장과 숙소만 오간다.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대구에 머물때도 기껏해야 선수단 숙소로 정해진 수성관광호텔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게 최고의 낙이다. 호텔측은 박대통령이 머무는 스위트룸을 제공했다. "경기가 없는 날 등산을 가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그러다보니 산에서 길을 잃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 야구 잊으려고 버릇처럼 책 읽어

"수만 관중에게 놀림(야지)을 듣고도 사람을 만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야. 사람이 제일 무서워. 시합에도 지고 뭐하러 돌아다니노, 혹은 시합에 이겼다고 설치고 다니네 하는 소리가 다 들려"시합이 끝나거나 없는 날은 책을 본다.

"골치아픈 야구 잊어버릴려고 그러지. 아, 그때 내가 그 사인 내서 실패했다, 그때 투수를 안 써서 졌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면 밤새도록 잠을 못자요."그저 잊어버릴려고 읽던 책이 버릇이 됐다. 어디서든 시간만 나면 책을 읽는다. "아마 야구선수 10명중 9명은 나를 싫어할 것야."

야구장에서 의자를 던지는 고약한(?)성질로 소문났지만 실제로 야구인 생활 50년에 의자는 딱 두 번 던졌다. 그것도 "빨리 안도망가, 안도망가"하고 고함쳐서 다 도망가고 나면 던졌다. 선수가 다치면 감독만 그팀만 손해니까.

◆ 프로라면 찾아오는 인사보다 좋은 경기를

"감독생활에서 제일 힘들었던게 경기부담 보다 회사내 신경전"이라는 김 사장은 감독의 맘고생을 알기에 불간섭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감독, 코치가 있는데 사장이 직접 선수를 만나서 격려하면 감독코치가 뭐가 되는냐"는 김 사장은 운동장에서 만큼은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는 감독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고 털어놓는다.

"보통 1팀에 70~80명이 있는데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은 9명 뿐이죠. 그래서 감독 그만둘 때 단1명이라도 저 감독 안됐다는 소리 들으면 대성공입니다. 1백년 야구역사를 지닌 미국에서도 저 감독 명감독이라는 칭찬들은 사람 별로 없어"김 사장은 선수들이 찾아와서 인사할 시간 있으면 연습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어야 프로답다고 잘라말한다.

◆ 한때는 기러기 아빠, 평생을 집 밖에서 떠돌아,

평남 출신인 김사장은 6.25때 아버지와 함께 남하했다. 이북에는 어머니와 막 태어난 동생이 남겨졌다. 월남한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지만 새 엄마가 애를 낳지 못해 여전히 혼자였다. 부산상고, 우석대를 나온 김사장은 경기여고, 서울대 미대를 나온 한 살 연상의 최은원(崔恩媛, 66)씨와의 사이에 두 딸만 두었다. 의사 아버지 밑에서 귀하게 자란 아내는 결혼하고 딱 한번 운동장에 나왔다가 다른 사람들이 김감독의 욕을 하는 것을 듣고는 질려서 두번 다시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다. 두 딸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10여년간 기러기 아빠 신세이기도 했다.

"너는 경기(여고)까지 나와서 왜 야구선수랑 결혼했노라고 놀리는 아내의 기자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는 김사장은 "내가 죽으면 제사도 뭐도 필요없어, 그냥 화장에서 한강에 재 뿌려달라고 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 간장 생선조림 솜씨 일품

각종 기관단체장 모임으로 하루를 25시로 쪼개 사는 김사장의 요즘 주량은 맥주 1병이다. "감독생활 2-3년만 하면 위장약 심장약이 두주먹씩이야. 33년간 감독을 했으니 어딘들 아프지 않겠냐"는 김사장은 한해에 20여명의 국내 선수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며 우리도 돈 많이 주어서 우수선수를 붙잡아야 야구침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김 사장은 야구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지역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들을 만났고, 리틀야구클럽인 레오 창단을 앞두고 있다.

"초등학교 야구부에 유니폼 용품등을 보내줄 예정입니다. 문제는 감독의 인건비인데 어린 학부모들에게 부담시켜서는 곤란하죠." 스포츠는 가난한 집에서 돈안들이고 시작하는것인데 학부모들에게 비용을 부담시켜서는 곤란하다며, 빨리 프로선수들이 많이 은퇴해서 야구 꿈나무들을 댓가없이 가르치는 풍토가 조성돼야한다고 내다본다.

◆ 간장과 두부넣은 생선조림솜씨는 일품

"내가 부산에서 중학교부터 자취를 해서 음식하는데는 소문이 났어, 간장과 두부를 넣은 생선조림은 특미입니다."음식솜씨를 뽐내는 김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두번 만났다. 이회장의 생일때, 그리고 신년 하례식때이다. 이회장은 특별히 김사장에게 열심히하란 격려를 했다.

얼마전 일본 요미우리구단주를 만난 김 사장은 야구의 국제화를 위해 코치와 선수를 보내고 서로 교류하자는데 합의했다. "요미우리 같은 경우 일년 140회 경기 가운데 70회 정도는 다 매진됩니다. 요미우리 구장이 5만5천석인데..."

김 사장은 팬과 라이온즈와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이번 전지훈련때는 7명의 팬을 합류시켰다. 전지훈련이 먹고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외국에서는 전지훈련때 민박을 시켜요. 시민과 가깝게 하기 위한 것이죠. 우리도 그런 것 좀 할려고 해요" 김사장은 요미우리 구단의 전지훈련때처럼 도시락까지 싸들고 오는 열성팬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그날을 기다린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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