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아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無顔)해 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도광의 '이런 낭패'

대구시단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도광의 시인은 키가 커서 외로움을 잘 타고, 술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고향집에도 자주 들르시지 못했는가 봅니다.

그런 안쓰런 마음으로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는데,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가래를 뱉어놓고 말았다니,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고향의 '새순'은 때묻지 않은 생명성, 순결성, 누군가 평생을 닦아 도달했다는 바로 그 동심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술과 가래와 욕지거리에 찌든 어른들의 일상성, 속물성, 병든 도시성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봄의 새순을 지켜보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선생의 여리고 섬세한 마음이 바로 시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박정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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