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인들은 어깨가 처져 있다. 소외감이나 자괴감에 빠져 있는 문인들도 적지 않다. 글을 써서는 '밥'이 안 되고, '이름'에 별 보탬도 되지 않는 데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활자 매체가 발달하면서 오랜 세월 정신문화의 중심에 놓여 왔던 문학이 '변두리로 밀려난다'든가 '죽어간다'는 말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때 큰 영향력을 뿌리고, 주머니가 두둑했던 작가들마저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다.
문학 서적 판매 부진과 문학 저널리즘의 현격한 퇴조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외환위기 이후 문학류의 베스트셀러는 10분의 1내지 5분의 1 규모로 떨어졌다. 지난 한해는 출판사의 92%는 책 한 권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전업작가들이 설자리는 거의 없어지고, 절대다수의 문인들에게 원고료나 인세는 '그림의 떡'이 돼 가는 세태다.
이 와중에 '필자가 곧 고객'인 '사이비 문학지'들이 생겼다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는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든다. 이 악순환은 문단과 사회에 '공해'를 일으키고, 문학과 문인들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데 이바지(?)할 뿐이다. 권위와 공신력을 자랑하던 문학지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최근만도 연륜이 깊은 '동서문학', 이태 전 '21세기 문학'에서 새롭게 변신했던 '파라'를 비롯한 몇몇 문학지들이 폐간됐다.
계속되는 경기 불황과 시대의 변화 등으로 '문학이 망하는 건 당연하다'는 한 젊은 작가의 진단도 있었다. 모든 게 거덜이 나는 판에 '문학이 뭐 그리 대수냐'라면 할 말이 군색해진다. 게다가 현학적인 문인들이 기이한 어휘나 꼬인 문장, 풀기 어려운 표현으로 독자들을 질리게 만들거나 문학으로부터 쫓아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 문인끼리의 '폐쇄회로의 문학' '문학을 위한 문학' '권력화한 문학' 등도 악재를 부른 셈이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을 더 깊고 넓게 펼쳐내려 안간힘을 보이는 시인'작가들이 왜 없겠는가. 통속적 흐름에 영합, 가벼움과 상업성에 경도되는 문인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구나 제사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사이비 문인들이 크게 불어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국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문학작품은 물론 책을 읽지 않는 분위기의 확산은 '포퓰리즘에의 기울어짐'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영화인이 '오늘날은 문학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영화가 그 정서적 대변과 트렌드적 성향,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꿈까지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는 놀랍게도 '한국 영화 관객 1천만 명' 시대를 열었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큼직한 상들을 받아 우리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문학의 위기는 이같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과 맞물려 있다. 영상 매체와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은 우리의 생활 패턴을 엄청나게 바꿔놓았으며, 그 속도는 계속 붙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 인문학 경시 풍조, 학벌 사회가 부추기는 입시 위주 교육 등도 함께 어우러져 '한없는 가벼움'을 부추기는 추세다.
매체와 표현 양식이 급속도로 달라지는 이 변화의 시대에 문학의 소외를 놓고 타령을 늘어놓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문인들이 팔리지 않는 문예지들과 출판의 사양길을 마냥 아쉬워하거나 독자들을 원망하면서 '죽어 가는 문학'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가벼움의 시대에 문학은 인생과 현실 세계에 새롭게 눈뜨게 하는 참신한 '견인력'을, 한층 고양된 삶을 찾아 나서게 하는 '매력'을 증폭시키지 못하는 한 길은 안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문학의 진정한 부활'은 안타까운 꿈이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흔들림을 넘어서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문학의 위기'는 바로 '정신문화의 위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위기가 자살적이든 타살적이든, 걸림돌들을 하나씩 제거할 수 없는 걸까. 이 일에 공급자들부터 뼈를 깎는 심정으로 나서야겠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더 큰 문제가 아닐는지, 수요자 쪽에서도 자성해 봐야겠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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