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애송되는 김춘수(金春洙·1922~2004)의 시 '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세계를 아름답게 떠올린다.
시인은 이 시에서 사물 그 자체와 함께 존재의 심연에 이르려는 몸짓을 보여준다.
스스로 '사물화'됨으로써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인식의 공간을 열어 보이기도 한다.
'나'와 '너'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이뤄질 때 비로소 '꽃'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의 공간이다.
특히 그 관계는 대상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때 형성된다는 깨달음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내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고도 적었다.
이어서 '나'와 '너'의 만남은 대상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때 가능하다는 '인식의 눈'을 뜨면서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달라는 소망을 간절하게 토로하고 있다.
이 시를 제대로 읽으려면 존재론적 소망을 담고 있는 "우리는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는 구절을 지나치지 말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라고 풀이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풀이일는지 몰라도, 시 '꽃' 속의 '꽃'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다.
사람(人)은 사이(間) 때문에 인간(人間)이며, 인간은 그 사이 유지를 지상 덕목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건 아닐는지…. 그런데 요즘 사람 사이가 이지러지고 뒤틀려, 세상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꽃밭'이 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지금 세상은 배금주의, 인명 경시 풍조 등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누구나 실감할 만큼 사회 병리가 깊을 대로 깊어진 느낌이다.
더구나 잇따르는 패륜 범죄들이 대부분 '돈' 때문이라는데 그 심각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한 가장이 보험금을 노려 인터넷 살인 청부 사이트 운영자에게 아내와 두 자녀의 살해를 의뢰한 사건이 터졌다.
아들과 어머니가 가장 살해를 청부한 사건도 일어났다.
술 취한 가장이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딸에게도 중상을 입힌 사건도 있었다.
지난 1월엔 자식들로부터 수억 원을 받기로 하고, 수천억 원대의 재산을 관리하는 한 종교단체 간부인 아버지를 청부 납치하려던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이 붙잡히기도 했다.
20대 동거 남녀가 전 아내와 전 남편 사이에서 각각 태어난 영아 두 명을 때려 숨지게 하거나 유기했었다.
어쩌다 이런 '인륜(人倫) 파탄'에 이르렀는지, 놀랍고 두렵기 이를 데 없다.
이들 사건들은 성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돈만 좇으며 가정을 저버린,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불륜(不倫) 행각이 낳은, '막가는 세태'의 단면들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배금주의, 불륜과 가정 해체 현상, 인명 경시 풍조가 어우러진 '총체적인 인륜 실종 상태'는 좀 과장하자면 '지옥'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세태라지만, 돈이면 살인과 납치까지도 서슴지 않는 세상은 분명 살만한 곳이 못 된다.
게다가 신고만 하면 설립이 가능한 '심부름 센터'와 급격하게 팽창한 인터넷 사이트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니 실로 기가 찬다.
사회 구성의 기초인 가정에서조차 이처럼 인륜이 해체돼서는 안 된다.
'나'와 가족을 같이 여기거나 가족을 더 아꼈던 우리의 전통적인 미덕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무너져 내릴 건 뻔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달라지려면 가정은 물론 학교와 직장,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우리 모두가 이에 대한 위기의식 공유를 출발점으로 일그러진 사회를 복원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그 건강성과 '화해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바로 일으켜야 한다.
아울러 범죄의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 카페, 심부름 센터 등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단속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인간적인 자제력과 신의(信義), 사랑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인간 관계'는 인륜과 천륜(天倫)을 저버리지 않는 데서 싹이 트고 자란다.
공동체의 최소 단위이자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가정에서부터 그런 미덕 되찾기에 서두르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하리라.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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