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업계 출신 셋 경북대 진학기

"더 이상 '공돌이'라고 부르거나 계산기나 두드리는 경리 아가씨 정도로 깔보면 안 되죠."

실업계 고교생들의 대학 진학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4년제 대학의 인기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업계 고교 동일계 특별전형 실시와 수능 직업탐구영역 신설 등 대입제도 변화로 대학 문이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새내기 대학생이 된 배혜정(19)'구효신(19)양과 신휘섭(19)군 등 3명은 실업계 고교를 졸업했지만 모두 당당히 경북대 동일계열 전공에 합격했다. 이들을 통해 급부상하고 있는 실업계 고교의 매력을 들어봤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 입학

배혜정 양과 구효신 양은 가방을 메고 경북대 캠퍼스를 거닐 때마다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중학교 때만 해도 대학 진학을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실업계로 진로를 선택하면서 대학 진학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된 것. 내신성적으로만 입학이 가능한 수시전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자연과학고를 졸업한 배양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아예 특별전형을 노리고 실업계 고교로 진로를 선택한 덕분"이라며 "중학교 졸업 성적이 일반계 고교에 간신히 턱걸이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았지만 실업계 고교에서는 조금만 노력하면 전교 1, 2등은 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은 구양도 마찬가지. 일반계 고교 진학은 가능한 성적이었지만 간신히 대학을 갈 수준이라면 차라리 빨리 취업에 나서는 것이 어려운 가정 형편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제일여자정보고에 진학했던 것. 하지만 현재 구양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에 재학중이다. 구양은 "만일 사립대에 합격했다면 등록금 부담 때문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국립대라 등록금 부담이 적어 더욱 기뻤다"며 "은행 등에 취업한 친구들이 많아 한때 취업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대학 졸업 후 더 큰 꿈을 기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무는 짱!

신휘섭 군은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경북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로 진학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도 바로 지역 기능대회는 물론 전국 대회까지 상을 휩쓸었던 화려한 경력이었다.

신군은 "공부에 취미가 없어 대구전자공고로 진학했는데 기술적은 측면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게 됐다"며 "TV나 라디오를 조립하고 회로판을 만드느라 학교에서 밤을 샌 날이 샐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적성을 발견하면서 게으르기만 했던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모든 일에 용기를 갖고 맞설 수 있게 된 것. 기능부에서 밤을 새는 날이 많아 수업을 빼먹은 것도 부지기수였지만 오히려 성적은 점점 향상됐다. 신군은 "기술 향상에 매달리면서 집중력과 뭔가를 이뤄보겠다는 의지가 강인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며 "더구나 공고에서는 조금만 노력해도 내신성적이 쑥쑥 향상돼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말했다.

구양도 같은 학과의 어느 누구보다 컴퓨터와 회계 등 실무 분야에 있어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실업계 고교 3년 동안 따 놓은 자격증만 10여 개. 일반계 학생들이 수능 점수에 매달려 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시간에 워드 자격증에서 정보처리기능사, 엑셀, 회계, 한자능력시험까지 자격증 공부에 몰두했던 것이다.

▲기초 실력을 다져놓는 것은 필수

하지만 대학 입학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이들 3명은 입학 후 첫 시험인 중간고사를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일반계 고교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고교 3년 동안 쌓아온 기초 학력에 차이가 커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배양은 고등학교 시절 배우지도 않았던 화학 과목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생명식품공학부 강의에는 화학 과목이 필수지만 자연과학고에서는 아예 화학 과목이 개설조차 돼 있지 않아 과 친구들보다 실력이 훨씬 뒤처지기 때문이다. 신군도 "공대에서 기초적으로 해야만 하는 물리'수학 등의 강의를 듣다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래도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 다들 고교 입시학원에까지 등록해가며 열심히 노력중인 것. 신군은 "일반계 학생들이 공부할 때 놀았던 만큼 지금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할 각오"라며 "실업계 고교에서 쌓은 기술 능력에다 이론을 합쳐 진정한 전문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는 학생이라면 내신성적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대학 진학 후 필요한 전공 과목을 미리미리 익혀 둘 필요가 있다"고 후배들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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