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려진 곳 숨은 이야기-울릉 도동항 '부선의 추억'

큰배 승객 옮겨주는 '하시게' 알아?

1969년 3월 어느날 포항~울릉도 여객선 청룡호(350t·동양해운) 객실. 갓 스물을 넘긴 '총각 선생님' 은종진(57) 상주 화달초교 교장은 밀려오는 배멀미의 고통에 초임 근무지로 울릉도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전날 오후 6시 포항 동빈동 부두를 떠난 배는 밤새도록 캄캄한 동해바다를 헤쳐 오전 7시가 돼서야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지 닷새만에 떠난 항해가 마침내 끝났다는 기쁨과 새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섬마을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보고싶다는 설렘도 잠시.

은씨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배가 부둣가도 아닌 뭍에서 200m쯤 멀리 떨어진 도동항 포구 한가운데에 닻을 내린 것. "어떻게 섬까지 가란말이야?"

은씨의 궁금증은 잠시 뒤 나타난 조그만 배 한 척을 보고 금세 해결됐다.

청룡호가 뱃고동을 두어차례 울리자 작은 전마선(傳馬船)이 다가와 배를 뭍과 굵은 고정로프로 연결했고 곧 무동력선 '하시게'(부선)가 도착한 것.

도동항에 접안시설이 없었던 시절 울릉도를 다녀왔던 관광객이나 울릉주민들이라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하시게'는 로프에 묶여 인력으로 움직이는 작은 배. 한꺼번에 40∼50명이 탈 수 있었고 포항에서 들어오던 생필품을 옮기는데 필수적이었다.

은 교장은 "울릉도가 고향인 중장년층은 부선이라면 몰라도 '하시게'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하시게에 타다가 바다에 빠져버린 일은 학교 대항 자전거대회와 함께 아직도 제자들과 만나면 추억의 이야기거리로 이어진다"고 웃었다.

박남기(55) 경북도 자치행정과장은 "60년대 후반 울릉도에 근무하던 선친을 따라 울릉도를 찾을 때마다 하시게에 타다가 빠져 온 몸이 젖은 채로 숙소까지 걸어가곤 했다"며 "안개 낀 날에는 도동항에 봉화를 피워 멀리서도 울릉도 도착을 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70년대까지만 해도 울릉도 토박이 가운데 한번도 육지를 밟아 보지 못하고 섬에서 일생을 마친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하시게'를 못타본 주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당시 주민들은 생활이 어려워 한달에 네댓차례 오가는 여객선 비용마련이 힘들어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본토' 소식을 귀동냥하기위해 부두로 몰려와 선원들과 하루종일 정담을 나눴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까지 없었던 개구리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하시게의 도움이라는 농담도 있다.

울릉도 초등학생들이 이런저런 일로 본토에 갔다오면서 올챙이를 가지고 와 하천에 방류했는데 하시게를 타지못했다면 개구리의 번식도 불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것.

이영관(85) 울릉장학회 회장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2천명 넘게 울릉도에 거주하면서 주민들이 쓰는 각종 선박 명칭이나 생활용어도 일본식으로 바뀐 게 많았다"며 "'하시게' 역시 일본식 용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 교장이 뛰는 가슴을 안고 타고 왔던 청룡호와 하시게는 이제 울릉도에 오지않는다.

지난 1977년 7월 한일호(1천t급)가 취항하고 여객선 접안부두시설이 만들어지면서 일제시대부터 70여년간 이어져온 '하시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세 시간 남짓이면 육지에 닿는 쾌속선이 동해 바다를 날마다 가르면서 독도와 울릉도를 보려는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imaeil.com사진: 울릉도 도동항 앞바다에 닻을 내린 큰 배가 청룡호이고 옆에서 승객을 태우는 배가'하시게'. 청룡호와 하시게 인근에는 어선들도 보이고 부두에는 울릉도에 도착하거나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사진 제공 은종진씨'상주 화달초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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