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씨앗

지난해 아파트 화단에 심었던 분꽃이 저 혼자서 씨앗을 얼마나 퍼뜨려 놓았는지 올 여름은 온통 분꽃천지가 될 참이다. 민들레처럼 바람에 씨를 날린 것도 아닐텐데 어미 근처에 둘레둘레 새끼분꽃들이 키재기하듯 자라나고 있다.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2천년이나 된 종려나무 씨앗의 싹을 틔우는데 성공했다. 영화화 되기도 했던 저 유명한 마사다 요새(기원 후 73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은 유대인들이 최후까지 싸우다 960명이 집단으로 목숨을 끊은 곳)의 지하에서 찾아낸 씨앗들을 화분에 심었더니 6주 후 하나가 싹을 내밀어 지금 30cm 정도 자라났다 한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연전에도 중국에서 1천200년 된 연꽃 씨앗이 싹을 틔웠고, 2차 대전때 자연사박물관의 화재 진화를 위해 엄청나게 물을 뿌렸더니 500년 된 씨앗에서 싹이 돋기도 했다. 심지어 3천년된 씨앗이 꽃을 피운 것도 있다 한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한 미라의 손에 꽃이 들려 있었는데 공기에 닿는 순간 꽃은 바스라지고 몇 개의 씨가 남았다 한다. 그걸 영국에 가져와 심었더니 싹이 트고 자라 꽃을 피웠는데 스웨덴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서 다알리아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놀랍고도 신비롭다. 그토록 오래된 씨앗들 속에 생명이 숨쉬고 있었다니.

중국 신쟝(新疆)의 우루무치에 있는 미라 전시실에 가본 적이 있다. 약 1천년~3천년 전 그 지역 사람들의 미라 수십 구가 각각 유리상자 속에 들어있는데 건조한 기후 탓에 썩지 않는 것이다. 어떤 미라엔 '3천년전의 미녀'라는 설명서도 붙어있었다. 생전엔 절세미녀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종잇장 같은 피부가 해골을 감싸고 있을 뿐. 생명이 사라졌기에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미라들이다.

오래된 씨앗들의 부활은 그 속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한 단단한 껍질, 그리고 수천년'수백년을 기다려 온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삶이 너무 무겁더라도, 곧 죽을 것처럼 힘겹더라도 자기 속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면, 참고 기다린다면, 언젠가 다시 꿈틀거리는 생명력으로 일어설 수 있음을 작은 씨앗들이 가르쳐 주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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