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된다. 절대 안된데이."
장귀선씨는 단호하게 취재를 반대했다. 25년째 기자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알게 됐지만 동기간에만 쓰는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유일한 사회선배인 그가 오늘 7월 여성주간에 목련상(자원봉사대상)을 받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에 인터뷰 얘기를 꺼냈다가 퇴짜만 맞았다. 자신의 수상 소식이 자원봉사자들에게 누가 된다고 끊는 터라 더 이상 밀어붙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꼭 알리고 싶었다. 각박한 세상에 사랑이 뭔지, 낮게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를 느끼게 하는 그가 무료자선병원(남산동 성심복지의원)에서 작은 희망의 꽃인 자원봉사자들과 만들어가는 매일의 기적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사랑이 고갈되면 찾아가는 곳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지닌 '사랑의 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데 입을 떼지 않는다. 며칠을 고민하며 들락거리는데, 그가 일하는 무료병원에서 간행한 자료가 눈에 띄었다. 이 병원 개원 10주년(2002년) 기념책자 '아픔을 나누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에 쓴 어느 자원봉사자의 글-.
"…바쁜 시간 가운데도 그곳에 가면 평소에 그리던 참 진료의 맛을 볼 수 있어서 기다려진다.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고 조그만 정성에도 크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다. 또하나 내가 그곳에 꼭 가는 이유는 봉사하는 직원과 자원 봉사자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무장이자 큰언니로서 자신을 던져 봉사하는 장글라라(장귀선씨의 본명)씨를 보면 사람이 얼마나 희생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외받는 어르신을 대하는 자세나 부당대우를 받고 곤경에 처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애쓰는 모습이 나의 발길을 끄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략" (강구태 늘열린 성모병원 원장)
강씨는 "가슴에 사랑이 고갈되어 가면 그곳에 들러 한 달 동안 쓸 사랑을 충전하고 돌아온다"고 적고 있다.
◇수도생활 거쳐서 봉사 현장으로
성심복지의원은 지난 91년 5월 의사이자 사진작가였던 고 김영민 박사가 자신의 병원이던 성심이비인후과 의원(구 대건고 입구 골목어귀)을 대구대교구에 기증하면서 생겨났다. 버려져 있는 가난한 이웃을 치료할 수 있는 무료병원의 텃밭이 생긴 셈이다. 몇년 뒤에는 고 임학권 박사가 성누가의원(현재의 집)을 기증, 이곳으로 옮겨왔다.
한때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장씨는 국제재활원 대구결핵요양원 등을 거쳐 92년 11월 성심복지의원으로 왔다. 성심복지의원은 내과 신경과 치과 한방과 등 진료과목을 차차 늘려갔다. 이가 빠지고 귀가 떨어져나간 헌 그릇처럼 낡고 보잘 것 없고, 오갈데 없는 이들이 '무시로' 찾아왔다. 그러나 돈도 없고, 후원회도 없어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일 년만 살아보고, 정히 어려우면 그때 가서 문을 닫든지 어떤 결정을 내리고자 했는 게 벌써 10년이 되었다니 이건 기적입니다. 물론 글라라씨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컸을 것입니다."(같은 책자에 실린 박병기 신부의 말)
◇세상을 바로잡는 양심의 눈
한 칠팔년 전인가 급하게 장글라라 형님이 밤에 전화를 해왔다. "우리집(성심복지의원)에 오는 최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의식불명에 빠졌는데 무단횡단으로 몰려 힘들게 됐다. 나는 최 할아버지를 믿는다. 최 할아버지가 횡단보도에 빨간 불일 때 건너갈 분이 아닌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농아자인 최 할아버지는 말은 못할지언정 남을 괴롭히거나 법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 없이도 살 착한 분이 정지신호 때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사고를 당했다니 납득이 안돼. 그런데 본인이 혼수상태니 어쩌면 좋아…."
그의 답답함을 본사 사회면 '가로등'에 썼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기사를 본 목격자가 나타나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최 할아버지를 미처 보지 못한 운전자가 치었다"고 증언했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깨어났고, 사실은 밝혀졌다.
◇제도적 모순은 뛰어넘어야 할 과제
그는 늘 이런 식이다. 그냥 자선병원이니 무료진료나 해주고, 약 좀 건네주면 끝인 그런 식이 아니다. 주민번호조차 없는 한 노숙자의 신원을 추적해서 자신을 찾게 해주고, 불법체류자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의 억울한 산재를 처리해주었다. 철없는 미혼모가 소중한 생명을 무사히 출산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병고와 절망, 좌절에 찌든 이들은 그에게 오면 신비하게 문제를 해결해간다. 물론 관계자의 구박이나 제도의 모순 때문에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는다. 지난 의약분업 때는 무료 자선병원인 이곳마저 공짜 약품 공급이 중단됐다. 당장 보건복지부를 찾아가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길을 찾았다.
◇매일 기적이 일어나는 집
이곳에는 일주일에 1천300명이 넘는 환자들을 26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돌보고 있다. 이곳 자원봉사자의 주축을 이루는 10년 이상 된 봉사자들이 진료스케줄이나 봉사일정표를 스스로 만들어준다. 최근에는 병원까지 찾아올 힘도 없는 이들을 위하여 가정봉사원파견센터까지 꾸려가고 있다. 물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은 단 한 푼도 없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하루에 200여 명의 환자들이 인술을 실천하는 최고급 의료진으로부터 무료진료를 받고, 감사함에 젖어 돌아간다.
"이곳은 환자들도, 자원봉사자들도 특이합니다. 자원봉사 의료진들은 무료진료를 해준 뒤 할머니들 밥을 사고, 무료진료를 받으러 온 할머니들은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곳인데 깨끗해야 한다'며 걸레와 비를 듭니다. 희생의 교대죠."
가난은 때로 놀라운 선물이며,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마음 한자락 내어주는 분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집 성심복지의원의 한가운데 그가 있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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