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두산 트레킹

안개의 끝은 천지인가...

몸을 날려버릴 듯한 강풍,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구름.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백두산 5호경계비를 오르는 길이 만만찮다. 바람살이 세지면서 옷깃을 여미다 이내 겸연쩍어 포기하고 만다. 잔설 사이사이 고개를 내민 노란만병초 때문이다. 눈이 녹은 곳은 어김없이 꽃들이 들어찼다. 쌓였던 눈을 밀어내고 백두산의 봄을 부른 만병초가 당당하다.

짙은 안개에 쌓인 계단을 오른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흐릿한 꿈속 같은 길. 40여분 만병초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다보면 능선 위에 초라한 비석 하나가 나타난다. 5호경계비. 붉은색으로 '中國'이라고 쓴 쪽이 중국 땅이고 푸른색으로 '조선'이라고 쓴 쪽이 북한 땅이다. 괜히 북한 땅에 발을 디뎌본다. 비자도, 까다로운 출입국심사도 없다. 허망하다.

이내 고추바람이 기승을 부린다. 여전히 구름 속의 백두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천지도 깨어나지 못했다. 하긴 백두산을 오르는 사람 누구에게나 모습을 보여준다면 싱거울 터. 더러는 수줍은 듯 꼭꼭 숨겨둬야 백두산답다.

트레킹은 이곳서 왼쪽으로 마천우(2,564m)와 청석봉(2,662m)을 향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오른쪽 북한 땅을 향하고 있다. 그것도 찰나뿐. 갑자기 채찍비가 내린다. 순식간의 일. 과연 백두산답다. 날이 선 빗줄기는 차라리 칼부림이다. 굵은 빗줄기가 연신 뺨을 후려치는 악천후. 이런 호된 매는 맞아본 기억도 없다.

천지를 내려다보며 울컥하는 무엇 때문에 눈물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여기선 그런 걱정마저 사치다. 쫓기듯 되돌아 내려오는 길이 처연하다. 오를 때 당당해 보였던 노란만병초도 안쓰럽다. 용케도 칼바람과 굵은 빗줄기를 이겨내는 중이다. 행여 변덕심한 천지의 바람에 날아갈까 바짝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연한 꽃잎만은 붙들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백두산을 오른다며 다시는 중국 땅에 오지 말라". 조선족가이드의 뚱딴지같은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아 트레킹을 하더라도 어차피 천지의 반쪽 중국땅 아닌가. 여긴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이다. 천지를 완전히 한바퀴 돌 수 있을 때까지는 날씨에 대한 불만도 삭여야 한다.

백두산=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 지난 25일 새벽 백두산 특산식물인 만병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5호경계비를 향해 오르는 매일신문-대구등산학교 트레킹팀.

▶떠나기 전에

백두산은 이제야 봄입니다. 햇볕이 들지 않은 곳은 사람 키높이의 눈이 아직 쌓여 있습니다.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감상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백두산 트레킹은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철저한 준비를 해가야 합니다. 비바람이 없을 경우 우리나라 초봄의 날씨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번 바뀌는 날씨이기에 방수용 윈드자켓은 필수입니다.

가능하면 비옷도 함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비를 맞으면 체온이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영상 10℃ 이하의 기온에 맞는 등산복장을 갖춰 입어야 합니다. 강한 바람을 타고 내리는 비는 사정없이 뺨을 때리기 때문에 창이 있는 모자도 필요합니다. 사소하지만 장갑까지 꼭 챙겨야죠. 등산화는 트레킹화보다 목이 긴 등산화가 빗물이 들어가지않아 좋습니다. 바지단을 등산화 위로 빼놓는 거죠.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두는 것도 백두산트레킹에선 감안해야 합니다. 트레킹은 새벽3시 기상, 새벽 5시 출발이 일반적입니다. 최소한 첫날 실패를 감안해 다음날까지 백두산 근처에서 머물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백두산트레킹이 목적인데 다른 지역 관광보다 우선적으로 일정을 잡아야합니다. 인터넷에서 백두산 야생화에 대해 미리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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