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예술 속에 꽃피는 도시

지난 6월 영국 게이츠헤드(Gateshead)에서 열린 제19차 국제공연예술기관협회(ISPA) 총회에 참석했다. 평소 지역의 변화 특히 문화예술로 인한 변화가 주민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번 방문에 남다른 기대를 갖게 했다.

그 기대감이란 게이츠헤드의 경우처럼 영국에는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 사례가 많아서였다. 지금 서울은 청계천 복원, 뉴타운 건설 등 거대한 도심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이들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이츠헤드는 영국 타인강변에 인접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로, 과거 공업지구로 매우 발전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 200년 동안 이 지역의 대표 산업이었던 중공업의 갑작스런 침체로 인해 도시 전체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경제활동의 기초인 인력고용이나 환경, 교육, 건강 등 모든 부분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런 도시가 어느 날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게이츠헤드가 주목받는 도시가 된 중심에는 바로 예술이 있었다.

그들은 우선 과거 공업화의 황폐화된 잔재들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게이츠헤드가 자랑하는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Gateshead Millenium Bridge), 예전 제분공장을 개조해 만든 '발틱(Baltic) 현대미술관'과 유럽 최대 규모의 독창적 공예품 상점인 '비스킷 팩터리'(The Biscuit Factory), 과거 석탄과 밀가루를 나르던 강가에 세워진 기념비적인 음악당 '세이지 게이츠헤드'(The Sage Gateshead) 등 아름다운 문화공간이 들어서면서 황량하던 도시가 점차 문화예술의 요람으로 변해갔다. 특히 이 공간들은 건축 디자인뿐 아니라 그 안에서의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밀레니엄 브리지 주변은 이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예술단지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도시를 유서 깊은 북잉글랜드 지방의 문화예술 및 경제적 르네상스의 상징이라고 부른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게이츠헤드의 성공이라는 것도 사실 도시의 예술공간을 최대의 문화상품으로 포장하여 마케팅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쩌면 게이츠헤드의 외적인 변화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게이츠헤드의 사례들이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부각된다는 것은 그들의 상술을 떠나 예술과 문화의 중요성, 공간의 중요성을 알고 활용하는 한 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마케팅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문화공간들이 도시의 중심이 되기까지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되었다는 점이다. 주민의 접근성을 가장 많이 고려하였고, 장애인을 비롯해 도시를 찾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충분히 있어왔다.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예술가들이 모였고, 주민들은 그 안에서 삶을 즐기는 살아있는 도시가 된 것이다. 만약 그곳에 현대식으로 변모된 외형만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흥미롭고 혁신적인 건축물들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복원된 이 도시의 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문화선진국들은 문화와 삶의 관계, 나아가 문화상품에 대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술을 사랑할 줄 알며, 무엇하나 소홀하게 여기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도시가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기간이 짧다고 해도 자신들의 일상과 예술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는 그들의 문화와 문화상품의 개념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많은 국가예산으로 만들어 놓고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문화공간과 문화상품의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

문화는 만들어진 것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물의 유용성이 멈춘 때부터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된다고 하지만, 문화라는 상징적 상품의 기반은 살아 숨쉬는 삶이다. 살아있는 삶의 공간과 시간대로 옮겨놓는 것은 바로 예술가와 행정가, 그리고 지역주민들이다.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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