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크족의 無用之用

통크(Tonk)족(族).

신세대 스타일의 어르신 계층이 늘어나면서 새로 생겨난 신조어(新造語)다. 아들'딸 다 키워놓고 이제는 부부 둘이서만(Two only) 손자 손녀 바라지에 매달리던 옛 관습도 뿌리치고 (No kids) 남은 노후 여생을 즐기겠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로는 55세 이상 어르신 세대의 소득은 90년대 이후 매년 10%씩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5년 뒤부터는 국민연금 등 연금 수급권자가 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노년 세대가 새로운 소비자 그룹으로 떠오르고 소위 실버시장의 구매력 규모도 올해 25조 원 규모에서 5년뒤에는 37조 원으로 급등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이제 나이 들면 뒷방에 앉아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동네 슈퍼에서 푼돈 소비나 하고 손자 손녀 치다꺼리나 하던 시대는 서서히 가고 있는 것이다.

퇴직금이든 연금이든 평생 모아 마련한 집한칸이든 내것 내가 챙겨서 오직 부부 둘이서(Only Two) 대접받는 고급 소비자로 살다 쓰고 가겠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실버세대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오나가나 눈에 밟히는 손자 손녀 봐주느라 허리병 나도록 생고생하며 해외여행 시간 뺏기는 것도 싫고 피붙이 정을 다소 떼더라도 나의 여생 역시 내리 사랑 못잖게 소중하다는 생각인 셈이다.

세상이 변해가는 탓이라 해 두자. 그러한 통크족의 신세대적 사고가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면도 없지 않다.그러나 어르신세대가 세상 변화를 뒤따라 가는 것만이 꼭히 여생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못가의 야생 꿩은 열걸음 걸어서 겨우 한입 쪼아먹고 백걸음을 걸어야 물 한모금 마시지만 새장 속에서 길러지는 편안함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롱속에 지내면 고생없이 먹이랑 물이랑 편하게 먹으며 살 수 있지만 마음은 편할 수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내 재산 움켜쥐고 자식 손자와 떨어짐으로써 얻는 풍요와 편안함이 과연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줄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통크족 실버세대는 건강, 재산, 사회적 능력 등 모든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어 무용(無用)의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장자(莊子)는 일찍이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도를 말했다.

'쓸모없음이 곧 쓸모가 있는 것'으로 쓸모없음이야말로 생명의 본성을 지키게 한다는 비유다. 배나 야자 같은 열매를 맺는 쓸모 있는 유용(有用)한 나무는 열매가 익게되면 잡아뜯기기 시작한다. 열매를 뜯기느라 부러지고 꺾여지고 잔가지와 잎들은 찢겨진다.

실버 세대가 '쓸모있음'(그것이 재산이든 건강이든 사회적 능력이든)을 지니고 있을 때는 아무리 통크족을 선언해도 끊임없이 자식과 주위로부터 그 쓸모있는 열매 때문에 배나 야자나무처럼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식세대의 가치관도 함께 변화하지 않는 한 Two Only No Kids는 아직은 우리민족의 삶의 방식엔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저금통장 지키고 손자를 외면하는 자기방어보다는 쓸모있음을 비워버리고 스스로 쓸모없이 돼버리는 무용지용의 도를 따르며 들꿩처럼 끝까지 희생과 사랑이 담긴 여생을 사는 길이 더 멋진 노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얻으려면 버리라고 했던가. 자식의 효도'손자의 사랑도 나를 쓸모 없을 때까지 다 비워주는 희생적 사랑에서 비로소 되얻어 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통크족 사고가 자연스런 세상이 돼야겠지만….

金廷吉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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