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소양고사 우수자로 도청에 발탁되어 지방과로 배치받았다. 지방과 근무 2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서무과 인사계로 발령이 났다.
자리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아 공채시험이 있었다. 1차 채점을 마쳤을 무렵 나는 첫 아이 출산 소식을 들었고, 급한 마음에 답안지를 금고가 아닌 캐비닛에 넣어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튿날 2차 검사 절차를 끝낸 후 마지막 확인과정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1차 채점한 답안지에서는 못본 것 같은 수정 표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응시자가 답안을 수정할 수 있었고, 그럴 경우 하단에 몇 개 수정했는지 기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응시자가 수정한 답안을 1차 채점자가 오답으로 잘못 처리했다면 이를 2차 검사자가 바로 잡는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캐비닛을 열고 부정한 손을 댔다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었고,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그대로 덮어두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부당한 자가 합격되는 결과를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미 답안지 검사까지 끝낸 상태에서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의혹만으로 불합격 처리하게 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 뻔했다.
나는 며칠 간의 고민 끝에 부정한 방법에 의해 합격자가 뒤바뀌는 일은 공직을 걸고서라도 막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면접에서 탈락시키자고 인사계장에게 제안했다. 필기시험 성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면접에서 기준점을 넘지 못하면 불합격 처리되었던 터라, 인사계장이 직접 면접관으로 들어가 문제의 응시자에게 과락 점수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준비한 사직서를 내밀며 담당자로서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인사계장은 사직서와 나를 몇 번 번갈아 쳐다보더니 "그렇게 하라"고 동의해 주었다.
결국 그 응시자를 면접에서 탈락시켰는데, 이후 수사기관에서 '정당한 채점을 문제삼아 특정인을 합격시켰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전화가 오기도 하는 등 후유증이 며칠 계속되었다. 사실 그때 내부적으로도 부정한 일을 한 사람을 밝혀내기 위해 고발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동료 한 명이 조용히 사표를 내고 떠남에 따라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돌이켜보면 만약 그때 적당히 타협했다면 나는 평생 마음의 짐을 졌어야 했을 것이고, 책임을 피하려고 얕은 수를 썼다면 많은 사람들이 큰 곤욕을 치러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지금껏 그때의 선택과 결정을 공직의 바른 길잡이로 여기고 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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