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무원 이의근, 신도리, 1969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네 조각 퍼즐을 맞춰보자. 신도리는 내고향 청도의 작은 촌락이고, 나는 1969년 경북도청을 떠나 내무부로 갔다. 그해 여름 박정희 대통령은 기차로 경남 수해현장을 가다가 신도리에 들렀다. 주민들이 제방과 안길을 보수하는 것을 보고 기차를 멈춰세운 곳이다. 이듬해 4월 박 대통령은 지방장관회의 도중 신도리에서 느낀 것을 말하면서 농촌 잘 살기 운동을 펼칠 것을 지시했고, 나는 내무부 첫 새마을 기획계장을 했으니 퍼즐의 답은 바로 '새마을'이다.
당시 박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가 새마을이었던 까닭에 계장인 나에게 지워진 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매달 있었던 대통령 보고 준비로 한 달의 절반 이상을 여관방에서 보내야 했다. 그때 지방국장이었던 고건 전 총리가 보고를 했는데, 세밀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졌던 대통령의 질문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슬라이드에 삽입된 오동나무의 열매 숫자까지 미리 파악하기도 했다.
1978년 청와대 새마을담당 행정관으로 발탁되면서 더 가까운데서 대통령의 새마을 챙기기를 보좌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자연과 산림을 생명처럼 여겼는데, 산지 개발은 시장'군수의 허가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산림을 조금이라도 훼손시킬 경우 사전에 대통령 결재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나는 수시로 헬기를 타고 전국의 산을 살핀 후 보고서를 올려야 했다.
정권이 바뀌고 주창자가 사라지면 어떤 운동이든 퇴색하기 마련이듯 이후 새마을운동 역시 굴곡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새마을 운동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던 것 같다. 5공 초기 내무부 새마을지도과장으로 있을때는 사회정화운동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막아내는데 앞장섰다. 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 시절에는 '새마을 운동은 순수 민간주도의 영속적 국민운동으로 존속한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민선 도지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도시와 농촌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올초에는 베트남에 새마을 운동을 전파하고 시범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순수한 땀과 열정이 녹아있다. 나 또한 마치 연어처럼 때가 되면 새마을의 품으로 돌아와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데 큰 보람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도 도청 옥상에서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을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앞으로 새마을 운동이 항상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국민운동으로 계속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우리도 시대를 초월하여 국민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정신적 자산을 하나쯤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의근 경북도지사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