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KT링커스의 지휘봉을 잡은 박부권(朴富權·54) 사장은 최근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공중전화 부문에서 일하는 임직원의 연봉을 평균 4천800만 원에서 3천800만 원으로 1천만 원씩 깎은 것. 그리고 향후 2년간 임금동결 및 임금상한제를 노조와 전격 합의했다. 박 사장 이전에 누구도 하지 못한 일로 노(勞)와 사(使)가 가장 먼저 뼈를 깎는 아픔을 공유한 셈이다.
그런 KT링커스는 이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디지털 보안시스템인 'KT텔레캅'을 통한 비상이다. KT링커스는 KT 자회사 가운데 두 번째로 크다. 하지만 주력인 보안시스템 부문 시장점유율이 3위에 불과하다. 직원 수 2천300여 명에 금년도 매출 목표는 2천200억 원.
이런 KT링커스가 2010년 보안시스템 분야 1위를 꿈꾸고 있다. 직원 수 5천여 명, 매출액 7천200억 원으로 요약되는 '비전 2010'이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뜯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하다. 2000년부터 시작한 '텔레캅'은 매년 70% 이상 고도 성장하고 있다. KT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힘이다. 경쟁업체들은 시스템 설치를 위해 별도 선을 깔아야 하지만 텔레캅은 KT의 전화선을 이용해 별도 선이 필요없다. 때문에 경쟁업체에 비해 설치비가 싸고, 가입자 가옥의 미관에도 좋다.
덕분에 현대건설 GS건설 동부건설 대우자판 벽산건설 등 10여 개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지을 때 텔레캅을 설치키로 앞다퉈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KT링커스에는 '한다면 하고 마는' 박 사장이 있다. 영양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울진으로 이사한 그는 빈한한 가정형편으로 평해중을 어렵게 졸업했다.
독학으로 온갖 공부를 하던 그는 18세 때 재건학교에서 가난해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그가 19세 때 모험(?)을 했다. 대입 시험 준비를 하는 후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향에서 공부하자'고 홍보해 한달간 재건학교에서 과외를 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선생에게 학생 20명이 수학을 열심히 배웠다. 선생보다 두세 살 많은 만학도도 있고, 학교 석차가 2등인 모범생도 있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참 간도 컸다"며 "제자들 가운데 변호사도 나오고 교수도 나왔다"며 흐뭇해 했다.
"어느날 공무원 준비서를 보니 80%가 아는 문제라서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당당히 5급(지금은 9급) 공무원이 됐다. 울진 부구우체국이 첫 근무지. 2000년 KT대구본부장으로 금의환향하고, 2003년 KT전무가 되는 영예를 누린 뒤 결국 KT링커스의 CEO가 됐다.
직장에서 일하며 틈틈이 공부한 그는 한양대 행정대학원까지 마쳤다. 영어 실력도 상당해 연수원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했다.성공비결을 묻자 박 사장은 "밤을 하얗게 새더라도 맡은 프로젝트는 제 시간에 끝내고, 함께 근무하면 다시 근무하고 싶은 동료가 되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했다. '책임감'과 '동료애'다.
술을 거의 하지 못하지만 그는 부장, 국장, 임원 때 5년여 간 기자와 부대끼며 거대조직 KT를 홍보했다. 술을 같이 마시지 않아도 별나다는 기자들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그가 살아가면서 지인에게 우연히 받은 호는 만청(晩靑). 늦은 나이에 청년처럼 일하라는 뜻이란다.
박 사장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금요회 멤버들. 대구체신청 주사보 시절 금요일에 만나 1인당 소주 2병을 마셔야 귀가하는 모임이다. 이번 휴가 때도 일곱 가족이 강원도를 거쳐 경주까지 6박7일을 함께 보냈는데 현직에 있는 사람은 박 사장과 변재영 KT경주지점장뿐이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그에겐 만청의 기회가 여전히 주어져 있는 셈이다.
이름처럼 적당한 부(富)도 얻었고, 넘치지 않는 권세(權)를 누리고 있는 만큼 그에겐 이제 청년처럼 일하는 것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슬하엔 딸만 셋인데 첫째만 출가시켜 안용덕 전 대법관과 사돈을 맺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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