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이제 방 안에서 불도 밝히지 않는다. 만화 채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도 웃지 않는다. 자신이 왜 이런 꼴이 됐나 한탄하고 있을까. 정상인처럼 걷지 못하게 됐다고…. 앞으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술이 남았다. 아이의 오른쪽 허벅지에 남긴 30cm 가까운 큰 수술자국, 왼쪽 다리에 또 그만한 상처. 불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 크고 깊은 상처를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이제 열세살인데. 아이는 그 무더웠던 여름에도 긴바지만 입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누나 둘을 낳고 아들을 갖겠다는 욕심에 마지막으로 얻은 막내 성일이(13)는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건너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1t 트럭에 부딪혔다. 타박상일 뿐 큰 걱정은 말라는 담당 의사의 말을 믿었었는데. 아이는 암이었다. '골형성육종'. 뼈에 틀어박힌 암세포가 뼈를 조금씩 썩게 만들면서 자라지 못하게 하는 몹쓸 병. 진찰 후에도 다리가 아프다던 아이를 엄살부린다고 타박했던 엄마였다. 그게 암세포의 장난인 줄도 모르고. 아이가 다치기 몇 달 전 들었던 보험은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계약했음이 분명하다'며 무효가 됐다.
벌써 5년, 아이는 13번의 큰 수술을 거쳤다. 지긋지긋하게, 끈질기게 붙어 기생하던 암세포를 모조리 긁어냈다. 왼쪽 장단지 뼈를 빼내 오른쪽 허벅지에 심었다. 성일이는 이제 오른쪽 다리가 자라지 않는다.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어떤 어른들의 뼈를 왼쪽 다리가 자라나는 그 길이로 맞춰 오른쪽 다리에 심어야 한다. 한번 수술에 800만 원의 돈이 들었다. 수술비를 제외한 치료비와 입원비용. 재발할 확률도 높다지만 그렇게 되지 않길 기도할 뿐이다. 죽을 병은 아니지만 아이를 장애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가족은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보낸다. 전세 집을 팔고, 은행에 대출을 받고, 사채를 빌어 쓰면서…. 빚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가 제대로 커주기를 빌고 또 빈다.
아이가 힘겹게 일어나서 목발을 짚는다. 집 밖에 나가야 소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 아이는 나의 부축을 마다한다. 이런 집에서 큰 고생을 시킬 수밖에 없는 부모를 원망할테지. 하지만 그 생각과 반대로 베시시 웃어보이는 성일이의 이마에 곧 땀이 맺힌다. 엄마가 잘못했다.
남편은 한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100만 원 정도의 수입 때문에 우린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고3, 고1인 우리 동순(18), 소영(16)이. 다른 엄마들처럼 못해줘서 참 미안해. 소영이는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월경 때면 심한 출혈로 병원을 찾는다. 350cc 혈액을 10팩이나 수혈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이 가난을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것임을 아는 것 같다.
며칠 전 병원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에게서 '가짜로 이혼해 수급권자로 만들어 어떻게든 살아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다. 더 이상 못난 남편은 되지 않겠다며 내 손을 붙잡고 울었다. 나는 아이 곁에 있는 것말고는 해줄게 없는게 한스럽다. 가슴은 도려내고 싶을 만큼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프다.
아이의 키가 커질수록 수술의 강도는 세지고, 수술비는 늘어갈테지. 하지만 난 희망의 끈을 놓치 않을거다. 꼭 나아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내 아들. 그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고싶다. 학교 친구보다 병원 친구가 더 많은 성일이가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힘껏 뛰어노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난 아이의 방에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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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골형성육종을 앓고 있는 막내 성일이를 볼 때마다 엄마는 늘 가슴이 아프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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