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 타는 여자'…세여자의 가을 여심

#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는 직장인 박미영(24)씨

"떠나고 싶어요. 예쁜 조명이 켜진 분위기 좋은 길을 무작정 걷고 싶어요. 마음이 심란하고 왜 이리 우울한지…. 가을이 되니 이제 또 한 해가 가는구나, 꺾어지는 나이가 돼간다는 생각에 더 울적해집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 준비하는 걸 보며 '아, 가을은 결혼의 계절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저는 남자친구랑 아직 결혼할 형편이 못 되니 더 심란하네요. 우울한 제 마음을 꼭 닮은 가을 하늘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 게 큰 즐거움입니다."

# 귀찮고 의욕이 떨어진다는 주부 이혜경(36)씨

"모든 일이 너무 피곤하기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무슨 일을 해도 의욕이 떨어집니다. 다섯 살짜리 딸이 궁금한 걸 묻고 예쁜 행동을 해도 그냥 피곤하고 귀찮기만 합니다.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정말 이런 제가 너무 싫습니다. 결혼한 지 6년. 남편은 신경질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기분이 좋다가도 아이나 저에게 화가 나면 아무 말도 없이 인상만 쓰다가 그냥 자버립니다. 그리곤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모습…. 무심코 흘려 넘겼던 남편의 반찬 투정에도 요즘은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습니다."

# 사는 게 허무해진다는 독신 여성 김지혜(42)씨

"해지는 가을 하늘을 보면 뭔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여름 더위가 지나 스산한 바람이 부니 가을이 오는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이런저런 잡념이 많아지고 사는 게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 봄·여름엔 일한다고 정신 없이 보냈는데…. 우울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의욕이 떨어질 때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비밀장소를 찾아요. 혼자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오솔길을 걸으며 기분 전환하고 마음을 추스릅니다."

# 가을은 여자의 계절!

눈이 부시도록 파∼란 가을 하늘, 창 밖으로 부는 스산한 바람…. 아! 가을이구나. 누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심숭생숭∼ 가을을 타는 여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소위 남자가 가을을 탄다는 것은 가을 분위기에 어울린다는 것이지, 실제 가을은 여자가 더 많이 탑니다."

김희철(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면서 기분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를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계절성 우울증은 여자가 70∼80%를 차지한다는 것.

"계절의 변화에 따라 기분 상태가 달라지는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일반적으로 환경적 스트레스와 호르몬의 변화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교수는 남성은 바깥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편이지만, 여성은 집안 일, 육아, 출산 등으로 심리적 스트레스와 생리적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더 많아 남성보다 계절성 우울증을 더 많이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가을이 되어 일조량이 줄어드는 것도 일종의 외적 스트레스라는 것. 줄어든 일조량으로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멜라토닌 분비의 이상 또는 비정상적 반응이 일어나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터넷 심리상담 전문 사이트인 '카운피아닷컴'의 전종국(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대표는 "계절이 바뀌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게 자연스런 감정인데 자신이 잘 서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마음이 허해지고 외로움이 밀려올 수 있다"고 했다.

# 가을 햇빛이 묘약!

"인체 내 멜라토닌의 생성을 억제하고 우울증 치료제인 세로토닌의 생성을 증가시키는 햇빛을 많이 쐬도록 야외활동을 자주 하는 게 좋습니다."

김 교수는 가을에 우울하다면 야외로 나갈 것을 권했다. 밝은 빛은 오히려 잠이 많아지고 폭식해 체중이 늘어날 수도 있는 계절형 우울증에 좋은 치료제라는 것.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자신만의 스트레스 대처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 대표는 계절의 변화를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라고 했다. 자신이 힘이 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가진 게 없더라도 사회봉사활동 등 의미있는 일에 참여하고 남편, 아내 등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느껴질 때 계절의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글·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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