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장발달-엄마 말에 짜증부터 부려

문 :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애가 요즘 들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틀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의 말에 짜증부터 부립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러니 불안합니다. 어찌됐든 아이와 대화를 통해 풀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 자녀의 양육과 교육 문제에 있어서 요즘 부모들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랄 때는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자녀에게는 무작정 이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대화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어도 이제 자식과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참 억울한 일이지만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녀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차근차근 시도해야 풀리는 일입니다.

자녀와 대화를 할 때는 우선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먼저 부모가 우월적 지위라는 생각을 떨쳐야 합니다. 부모들은 대개 지식이나 사고 능력, 경험 등 모든 측면에서 아이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내린 판단과 결론을 앞세웁니다. 아이의 판단을 다소 무시하면서라도 좋은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쉽지 않다면 내 아이가 아니라 남의 집 아이, 우리 사장님 아이, 홈스테이를 온 외국 아이로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는 자신이 설명하고 주장하는 이야기에 동의하리라 여기지만 아이들은 사고 체계가 다릅니다. 부모에겐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도 아이들에겐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면 다소 완곡하게 돌려서 할 말을 직설적으로 내뱉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면 대화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자녀와 대화할 때는 또 끈기와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고의 폭이 좁기 때문에 합리성이 떨어지고, 부모가 보기에 답답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말 몇 마디를 채 듣지도 않고 너의 생각이 틀렸다거나, 엄마의 생각은 이렇다며 끼어들면 대화는 진전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자녀와의 대화를 소통시키는 관건입니다.

이런 전제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면 대화를 시도해 보십시오. 대화를 시작할 때는 먼저 내 아이가 아니라 남의 아이, 외국 아이처럼 사고와 문화가 다르다고 생각하십시오. 대화 중에는 내용보다 아이가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가는 사고 과정을 살펴보며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아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 부모가 이를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야기에 대한 평가, 그에 따른 지시는 더욱 금물입니다.

부모의 생각과 결론이 다르다면 아이가 생각하는 대안을 이야기할 기회를 줘 보십시오. 부모가 이를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말한 대안에 대해서도 무조건 맞다 틀리다고 하지 말고 아이의 기분과 마음을 고려해 "너의 입장을 이해하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가서야 부모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자녀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관점에서 문제 해결의 방법을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아이의 동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가족회의 등으로 자리를 옮겨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일방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타당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면 아이들은 이를 통해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며 사고 능력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에게 사랑받는 것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내심 싫다고 해도 부모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일방적인 지시만 계속하다 보면 아이들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 됩니다. 부모가 조금만 잘못하면 과도하게 폭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으려면 어릴 때부터 자녀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생각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박용진(진스마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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