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식탁에서 소리도 먹자

아침 식탁에 오른 오이지를 씹으니 살강살강한다. 상치 쌈을 한 입 넣으면 처음엔 와삭와삭하다가 넘기기 직전엔 쩝쩝한다. 졸인 멸치는 존득존득하지만, 볶은 멸치는 바삭바삭하다. 국을 숟가락으로 떠먹을 땐 그냥 훅하는 소리만 나지만, 마실 땐 후루룩한다.

조금밖에 없을 땐 호로록한다. 무말랭이는 뽀드득, 철 지난 사과는 퍼석퍼석한다. 이렇게 음식물이 입술, 혀, 치아에 닿아 나는 소리는 그 맛 이상으로 참 재미있고 다양하다.

지난 겨울방학 때 미국에 체류하면서 모처럼 가이드관광을 했다. 끼니때 식당 앞에 우리를 부려놓은 가이드는 미국문화의 전령사라도 되는 듯 입구에서 단속한다. "음식 드실 때 제발 소리 좀 내지 마세요. 대화는 얼마든지 하셔도 좋지만, 씹는 소리나 스푼·포크 등의 소리는 절대 내지 마세요. 여기선 그러면 흉봐요."

흉을 보다니! 말소리는 되고, 씹는 소리는 안 된다? 우리는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마구 웃고 떠드는 소리에 식당을 옮기고 싶을 정도였다. 여행 와서 감옥살이 하라고? 음식을 씹으면 반드시 소리 나기 마련이지. 그러면 뭐든지 그냥 우물우물하다 목구멍으로 꿀꺽 쑤셔 넣어? 야채샐러드를 크림스프처럼 그냥 삼키라고?

문화차이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밥상에서는 가급적 얘기를 삼갔다. 남자들은 상을 물리고 담뱃대에 불을 붙이면서, 여자들은 설거지를 하면서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는 말없이 열심히(?) 먹었다. 음식물의 모양, 빛깔, 냄새, 맛, 게다가 씹을 때 나는 소리까지 먹고 즐기려니 대화할 겨를이 없었던 걸까?

식사 중에 나누는 시끌벅적한 대화도 재미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 수도, 중요한 안건을 처리할 수도 있다. 그러니 식탁에서 '소리도 먹자'고 한다면 초고속 시대에 무슨 잠꼬대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남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은, 자그마한 얘기 정도는 나누더라도 왁자지껄한 소음은 삼가자. 대신에 대화 사이사이 음식물이 내는 소리도 즐기자. 그러자면 꼭꼭 씹어야 하니 소화에도 좋아 일거양득 아닌가!

정화식(대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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