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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멀리 보고 긴 호흡으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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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수능시험은 운전면허필기시험처럼 일정점수 이상을 받으면 모두에게 동일한 자격을 주는 자격시험이 아니다. 수능시험은 전국 수험생을 학력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수험생을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세워 놓고 대학 서열에 따라 끊어서 데려가는 식의 현행 대입전형 제도는 소수에게는 더 없는 희열과 축복된 성취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줄의 후미에 위치한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심한 패배감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가채점에 따른 지원가능 배치표 등이 발표되면서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다.

▶ 다양한 후유증

수능시험 후유증을 가장 심하게 앓는 쪽은 물론 수험생 자신이다. 수능시험이 종료되면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수능시험 당일 가채점을 끝낸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불안한 지옥이라고 말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여학생이 강세인 언어가 너무 쉬워 변별력을 상실하고 여학생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학이 어렵게 출제된 올해 수능은 일부 상위권 여학생에게 특히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몇몇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잠을 실컷 자고 싶었어요. 그러나 3일을 밤낮없이 계속 잤더니 허리가 아파 더 잘 수 없었어요. 오히려 밤이 두렵습니다." 잠도 자신에게 궁극적인 위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지옥이란 타인의 시선'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수능 성적은 직장 생활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조기유학을 보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당분간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지역 어느 대학 교수의 말이다. "같이 어머니회 활동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하며 서로 의지했지만, 우리 아이가 시험을 망쳐서 이제 더 이상 전화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라며 한 어머니가 울먹였다. "아이가 재수를 시작한 지 얼마 후부터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가 세기 시작해서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입니다. 갱년기 장애까지 겹쳐 늘 몸이 가볍지 않고 아픕니다. 재수를 해서 조금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어요." 안경알을 닦으며 이 중년 여성은 계속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파트 같은 층에서 마주보고 사는데 한 집은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고 다른 집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피차 얼마나 어색한지 모를 겁니다. 서로가 멀리서 어느 한쪽을 먼저 보게 되면 눈치 못 채게 기다렸다가 다음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그런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어떤 때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화장도 하지 않는다는 어느 어머니의 우울한 독백이다.

▲ 부모가 먼저 여유를 가져야

상당수의 수험생들은 표현을 안할 뿐이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진학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께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다. 그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못 찾을 뿐이다. 그 미안함은 때로 반항심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가 계속해서 심하게 꾸중을 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면 학생은 설자리가 없으며 밖에서도 자신 있는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점수에 맞추어 대학 등급을 한 단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질없는 행위이다. 지금은 온통 점수에 매달려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합격 가능한 대학에 지원하고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부모부터 여유를 가져야 한다.

▲ 좀 더 멀리 바라보자

단판승부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이제 멀리 앞을 내다보고 긴 호흡의 승부를 하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미래지식기반 사회에서는 한번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끝까지 기득권이 유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공부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시작된다. 앞으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는 얼마나 필요한 실력을 갖추느냐가 문제될 것이다. 대학입시는 전체 인생에서 부분적인 한 과정에 불과하다. 입시와 관련된 오늘의 모든 고통도 궁극에는 세월과 더불어 치료될 것이다. 이제 수험생과 가족 모두는 자신을 추스르며 심기일전해야 한다.

윤일현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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