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황우석 사태 관전기

1.

황우석 사태, 생뚱맞게도, 월드컵이 오버랩 됐다. 길거리 응원, 일각에서 파시즘이라 했다. 광기와 집단 히스테리를 말했고 길거리에서 쫓겨난 노점상 생존권을 이야기했다.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 흥분했다. 운동회 때 우리 반 응원하러 트랙으로 몰려가 목 터져라 소리치는 데 뒷덜미 끌며 너 우리 반 불우학우가 몇인 줄 알고 노냐고 비난 받은 셈이었으니까. 사람들 PD수첩에 유사한 방식으로 흥분했다. 왜 하필 지금 꼭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냐고. 갑자기 웬 연구원 난자제공이 문제냐고. 모든 이의 자부심과 뿌듯함을 꼭 그렇게 깨뜨려야겠냐고.

말하자면 PD수첩은, 2002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결승 헤딩골은 카메라 사각이어 제대로 잡히지 않아 그렇지 사실은 안정환의 핸들링이었다는 것을 온갖 자료를 동원해 증명해내고 또 손에 닿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안정환은 거짓말쟁이라는 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입증한 꼴이다. 페어플레이는 월드컵 4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고 국가주의적 승부욕 때문에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며. 더욱이 그렇잖아도 그 골 핸들링 아니었냐고 이탈리아가 강력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에 사람들 왜 우리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느냐 흥분한 게다. 월드컵 4강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국익을 말하며.

의혹제기했던 네이처의 눈치를 살피고, 논문 취소될까 사이언스의 처분을 기다리며 전전긍긍 영미언론을 모니터하는 모습에선 이탈리아의 난리법석에 주눅 들어 숨죽여 유럽여론의 처분 기다리며 외신만 모니터하던 것이 떠오르고….

2.

사람들의 흥분 덕에 PD수첩 광고 다 떨어졌단다. 국익에 손상을 입혔다고. 대단들 하다. 한편에선 이런 애국주의를 반박한다. 비록 PD수첩이 황 교수 건에 일반범죄 다루던 문법을 고스란히 적용하는 우를 범하고 다소 치졸한 편집도 있긴 했으나, PD수첩의 지적은 대체로 팩트였으며 황우석 허물 덮기는 우리끼리는 통용되어도 국제과학계에선 어림없는 소리기에 덮는 것이 연구의 국제적 신뢰를 떨어뜨려서 오히려 국익에 해가 된다고. 옳다. 웬만해선 숨기면 결국 해된다. 오케이, 그럼 이득은. 만천하에 황 교수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얻게 된 우리 사회의 이득은. 생명과학 분야에 있어 보다 투철한 윤리의식 획득과 그에 준하는 보다 엄정한 프로세스의 확립. 아마도 그쯤일 게다. 그럼 손실은. 황우석 명성에 국제적 흠, 국민들 자존심에 상처, 연구진 사기의 저하 정도 되겠다. 속상하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대차대조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이번에 얻게 되는 사회적 이득은 지금과 같은 정도의 비용을 반드시 지불했어야 하는 건가. PD수첩이 방송하지 않고 황 교수에게 조용히 조언할 순 없었나. 황우석 거짓말쟁이를 크게 외치는 게 목표가 아니라 결국 생명윤리의식 고취가 목표였다면 말이다. 잠깐. PD수첩이 취재대상과 그렇게 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버리면 프로그램 본연의 존재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거지, 음. 간단치 않다.

3.

이 혼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우리 과학계의 열악한 연구현장, 어제오늘의 이야기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여태 우리 연구현장의 수준이 그러했다. 그 업보 황우석이 지고 있다. 이 참에 제대로 된 규범 세우면 된다. 다만 개인적으론 이 사태 관련해 두 가지 바람이 있다. 우선 연구원 난자. 헬싱키선언, 보편타당하다. 그러나 충분히 자발적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경우, 연구원 난자기증 가능하단 것이 배아복제 실험과정에서 우리가 경험적으로 획득한 실험윤리라고 국제과학계에 주장하는 꼴 좀 봤음 한다. 그 주장이 꼭 국제적으로 환영받길 원해 하는 생각은 아니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논리 있다면 헬싱키선언이고 나발이고 우리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 꼴 좀 보고 싶어서다. 어차피 헬싱키 선언이란 것도 각국의 상황에 맞게 합의하여 공개적으로 기준을 정하란 소리지 디테일까지 정해 각국에 전달된 무슨 절대법률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제 제발 황우석 좀 그냥 냅두자. 사람 죽겠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