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한가운데에 있던 공장이 떠나간 자리. 그곳엔 '난개발'만 남아 있다. 대구시가 공장이 떠난 터에 대한 명확한 개발원칙을 갖고 있지 않아, '키다리 아파트'만 난립하고 있는 것.
따라서 땅주인에게 일정 부분 개발이익을 허용하되, 공원·업무단지 조성 등 '100년 후 대구 도심'을 감안한 시설 구축의 기회로 공장 후적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장터 난개발= 북구 침산동 옛 대한방직 터(1997년 3월 공장 폐쇄·2만9천 평). 40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1만1천200평)가 섰다. 그 옆엔 할인점과 영화관이 입점한 판매시설(4천 200평)이 있다.
하지만 대구시와 북구청이 1997년 5월 만든 대한방직 터 개발계획에는 18층짜리 업무빌딩 4동, 스포츠센터(8층), 문화센터(5층), 백화점(7층) 등이 포함돼 있었다. 아직 1만 평이 빈터로 남아 있지만 '업무시설' 등 당초 계획이 지켜질 가능성이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북구청 관계자는 털어놨다.
사실상 '돈 되는' 아파트만 들어오고 당초 개발계획은 지켜지지 않은 것. 대구시는 주거용지였던 이곳을 일반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해 더 높이, 더 많이 지을 수 있도록 '혜택'까지 베풀었다.
북구청 관계자는 "대구시가 업무시설 개발을 전제로 주상복합 허가를 내줬어야 하지만 시는 아무런 사후보장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이곳에 업무 및 상업지구를 만들어 침산동을 새로운 도심으로 업그레이드시켜 보려는 계획이 좌절됐다"고 허탈해 했다.
부근 옛 제일모직 터(1996년 6월 구미로 공장이전·2만7천 평)도 사정은 마찬가지. 공원과 호텔, 국제 회의장 등을 갖춘 국제업무 중심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이 1997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계획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구시는 최근 "제일모직 측이 오페라하우스(2천624평)만 만들어 놓고 나머지 땅에 대해서는 당초 계획대로의 개발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며 "국제업무단지 개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제일모직은 이미 동쪽 끝 5천771평을 삼성전자에, 1천980평을 삼성물산에 팔았다. 이 지역 역시 '아파트'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 것.
최근 침산동 대한방직 터와 칠성동 제일모직 터 남은 부지를 아파트 용지로 바꿔 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대구시 관계자는 전했다.
△대구시의 무원칙= 대구시 관계자는 "업체들과 땅개발을 놓고 따로 합의하거나 양해각서를 체결해 놓지 않아 최초 세웠던 계획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다"며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많이 나빠져 개발을 강요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시는 12년 전에도 수성구 수성4가동 옛 코오롱 대구공장 자리(1993년 경북김천으로 이전·3만 5천 평)에서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코오롱은 당시 2만5천 평에 아파트를 지어 개발 이익을 갖는 대신 나머지 1만 평엔 문화시설이나 섬유박물관을 짓겠다고 대구시에 제안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구시는 당시 1만 평의 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변경, 용적률을 높여줬으며 코오롱은 3천 100여 평만 남기고 모두 팔아버렸다. 코오롱은 시가 건축제한 조치를 단행하자 1천500평을 녹지로 기증하고 달서구 두류음악당 건립에 200억 원을 투자하는 선에서 나머지 땅에 대한 처분을 허용받았다.
대구시는 코오롱 부지 개발과정에서도 사후보장 장치를 명문화해 두지 않은 것은 물론 일부 공무원은 돈까지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중구청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중구 옛 연초제조창 터(1만1천171평)라는 후적지가 또다시 생겨났지만 대구시는 재정 형편도 감안 않은 채 이번엔 전체 부지를 공원화한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웠다"며 "대구시는 후적지 개발에 대한 원칙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제 원칙을 만들자= 영남대 도시공학과 김타열 교수는 "대구시가 1984년 도시기본계획에서 코오롱과 제일모직, 대한모방(당시 제1공단) 공업지역을 주거용도와 상업용도로 변경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지가상승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공장소유 업체가 독점, 도시 내 자원의 불평등 배분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업지역은 향후에도 공업지역으로 존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도시형지식기반 산업 집적지로 유도해야 하고 주거,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하더라도 분명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시의회 입법지원과 장찬호 박사는 "서울시 조례는 준공업지역을 주거 또는 상업 지역으로 해제할 때에도 공업기능 우세지구, 주·공·상 혼재지구, 비공업기능우세지구로 나누고 있다"며 "아파트를 짓게 하더라도 공공시설 설치, 기부채납 20% 이상 등을 전제로 건축을 허용한다"고 주장했다.
장 박사는 서울시 경우 '도심의 공장, 학교, 공공시설 등이 이전한 후적지에 대해서는 일정비율의 공원 등을 확보, 녹지공간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는 지침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003년 도쿄시내 400여 개 군소공장이 떠난 자리에 영화·방송시설, 고급 아파트 및 공원이 어우러지는 신개념 업무단지를 조성했다. 도쿄의 삿뽀르 맥주공장 후적지에도 이 공장을 기념하는 박물관과 공원이 조성되는 등 도시전체 환경을 생각하는 후적지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북구 칠성동 옛 제일모직 터(2만7천 평)를 공원과 호텔, 국제 회의장 등을 갖춘 국제업무 중심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는 등 대구시는 공장 후적지 개발 때마다 번번히 행정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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