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도시 마케팅 시대다. 부산은 영화제를 포함하여 아시안 게임과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연 데 이어 올림픽까지 꿈꾸는 국제 해양 도시로 일찌감치 발돋움했다. 광주는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문화 수도로, 경기도 파주는 첨단 산업과 문화 예술인들이 몰려드는 신낙원으로 부상했다. 충청도 연기 공주 오송은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날개를 달았다. 산업 구조 고도화 시기를 놓친 대구와 총선을 겨냥하여 수도권 규제 총량제를 일시 푸는 바람에 위기에 몰린 경북은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
얼마 전 대구경북개발원이 주최한 낙동 포럼에서 대구'경북을 '학문의 수도'로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명예욕을 버리고 고향에서 학문에 매진했던 사림파의 후예들이 사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상이라고 여겨졌다. 쭉쭉 뻗어 있는 교통망과 괜찮은 정주(定住) 여건 그리고 지역 곳곳에 널려 있는 유'무형 문화재와 타 시도보다 많은 대학들도 이곳을 '학문의 수도'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더해 준다.
지역이 '학문의 수도'가 되려면 인재들이 찾아올 저명 교수와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위상을 지닌 대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갖춰야 할 요소들이 많지만 우선 대학의 중심 축 가운데 하나인 교수들의 사명감부터 달라져야 한다. 물론 대부분은 본질에 충실하게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들이다. 그러나 일부는 제자를 동원하여 분파를 조장하는 사이비 교수, 강의는 뒷전인 채 TV만 좇아다니는 텔레페서, 시'도'구청 회의에 불려 다니며 소신을 팔아 관련 공무원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꽃놀이파 교수들이 없지 않다.
막상 대학 사회의 안을 들여다보면 더 한심한 경우도 있다. 지역 대학들도 2000년대를 전후하여 평가와 경쟁의 원리를 도입했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한 제도상 허점을 틈타 변화를 거부하는 '농땡이 교수'들도 설친다. 최근 서울에서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휴강을 전혀 하지 않은 교수는 5%에 불과했다. 휴강은 대부분 '교수 개인 사정'(58.7%) 혹은 '이유 불명'(5.1%)으로 이뤄졌고, 56%가 보강을 하지 않았다. 쉽게 공부하고, 적당히 놀려는 학생들의 치기에 영합하여 교수들이 무단 휴강을 하는 이런 현상은 선진국에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논문이나 수업 때 학생을 골탕 먹이는 교수도 있다. 한 교수는 박사 과정생들에게 원서를 찢어 주고, 수강생들이 번역해 오면 토론이나 추가 설명 등으로 수업을 진전시키지 않고, 단어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식으로 수업을 때우며 육칠 년씩 붙들어 둔다. 졸업하고 나면 사제지간이 되는 게 아니라 원수지간이 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 한 대학원생은 졸업 논문을 제출했다가 지도 교수가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교수의 횡포이자 직무 유기였지만, 졸업에 발목이 잡힐까봐 내색조차 못했다.
눈가림식 연주회로 점수를 모아 평가를 통과하는 교수도 있다. 청중들이 찾아오기 전에, 미리 명시했던 시간보다 훨씬 전에 연주를 하고 그 팸플릿을 대학에 낸다. 평가에 연주회 비디오 테이프 심사 같은 거름장치가 없기에 이름이 적힌 팸플릿만 있으면 점수를 얻는다. 신상필벌의 엄격한 감시가 없는 탓에 무사통과다. 이런 연주자들이 지역의 연주 수준을 끌어내리고, 예술학도들에게는 환멸을 느끼게 한다.
학회에서도 '그 까이꺼, 대충 하지'라는 봐주기가 난무하고 있다. 발표자가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한 채 수십 년 전 논문을 그대로 베껴 내도 "그냥 넘어가자. 바른말 하다가 정 맞는다"는 인식이 통용된다. 학회에서 앞선 연구자들로부터 혹독한 질문을 받고, 그를 보충하기 위해 추가 연구를 덧붙이면서 뭔가 배워 나가려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학의 일그러진 단면을 필자가 침소봉대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대구'경북을 진정한 '학문의 수도'로 만들려면 탄탄한 연구진부터 갖추는게 그 출발점이다.
崔美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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