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당당한 음치 박희섭씨

"노래방에서 80점 벽을 깨기가 참 어렵더군요. 하지만 음치라는 이유로 기죽어본 적은 없습니다. 장점이 더 많거든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독한 음치라는 소개를 받고 만난 박희섭(33·다다액자) 씨는 당당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점수는 낮아도 시키는 노래를 주저해본 적이 없고 좌중을 휘어잡는 무대매너까지 있으니 인기가수가 부러울 리 없다.

때문에 박씨는 애써 음치교정을 통해 '득음'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지 않는다. 음치인 그가 노래방에선 오히려 분위기메이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하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방출입은 많지 않다. 1년을 통틀어봐야 4, 5번 정도. 잘 안 가는 이유는 아는 노래가 한 곡뿐이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는 늘 가수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른다. 고등학교 때부터 불러왔기 때문에 이 노래만큼은 어느 자리서든 자신 있다. 유독 이 노래에 집착하는 이유는 노래실력보다는 다양한 무대매너로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기 때문.

"이 노래는 가수 심신과 똑같이 쌍권총 춤을 곁들이며 박력 있게 해야 합니다.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게 비결입니다."

박씨는 이 방법으로 IMF 직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문이 꽉 닫혀있을 때 취업에 성공한 적이 있다. 한 기업체에서 예비신입사원들을 모아놓고 벌인 장기자랑경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 물론 노래실력으로 받은 건 아니다.

적절한 율동 외에 박씨가 털어놓는 '음치들의 노래방 접수' 두 번째 비결은 눈빛. 어색한 춤보다는 한 사람을 응시하며 박력 있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등 한 번씩 집중해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세 번째는 시키면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는 것. 큰 목소리를 위해서다. 빼다 보면 소심해지고 목소리마저 약해지면서 정말 박자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요즘은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제2의 십팔번으로 삼아 맹연습 중입니다. 이 노래 역시 비장의 무대매너가 있습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한곳만 쳐다보면서 불러야 하지요."

실력에 비해 너무 어려운 곡을 선정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박씨는 자신있다는 표정이다."노래실력은 상관없습니다. 같이 웃어주고 박수를 쳐준다는 믿음만 있으면 그대로 밀어붙여야죠."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