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름다운, 편지 쓰는 여인들

지난주에 체신청 산하의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회 송년모임에 초청되어 특강을 했다. 갓 결혼한 듯한, 고운 신부에서 백발의 할머니까지, 회원들 전부가 여성인 이들은 자기네들 상호 간에 편지교환은 물론이고, 자녀의 편지쓰기 생활화에도 주력한다고 했다. 다매체시대에 굳이 왜 편지를 쓰고, 권장할까. 또 왜 이런 모임에 여성들만 있을까?

전통적 가부장제나 남성 중심사회 내에서 여성들의 체제 부정적 속성이나 감성의 언어는 상대적으로 억압되어왔다. 이런 침묵의 공간은 결핍과 충동의 과잉으로 더욱 강한 서사욕망을 유발시킨다. 지배담론의 틈새에서 남성들은 이해하기 힘든, 여성들이 내는 신음과 울음·내숭·주문 따위는 그들도 모르게 욕망이 침묵을 깨뜨리고 터져 나온 것이다. 이들의 강력한 서사욕망이 껍질과 허물을 벗으면 수다가 된다.

그러나 수다 떨기만으로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충족 가능한 욕구와는 달리 환유적인 욕망은 끊임없이 다른 것을 향한다. 편지쓰기는 수다에 이은 대체물이 될 수 있다. 관계의 밀착에서 오는 수다는 때론 자신이나 상대에게 뜻밖의 상처를 남기기 쉽다. 그 치유방법 중 하나가 편지쓰기·읽기이다. 현대인의 자기소외는 익명이나 가명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발신인이 분명하지 않은 편지도 상당한 치유효과를 준다.

문자를 해득할 수 있는 여성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사돈지나 제문·축문 등의 대필자들이 있었다. 대필자는 감정이입이 된 상태에서 발신인의 정서로 편지를 쓴다. 그래서 대필자가 쓴 글이라도 수신자를 감동시킬 수 있고, 주위에 수많은 청자들까지 감동하게 했다.

첨단IT시대에도 여성들의 서사욕망은 여전하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고, 또 받은 편지를 서로 바꾸어 읽는 여성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또 그런 여성들이 많은 사회는 분명 따스할 것이다. 편지 쓰는 남성들의 모습은 더 아름다울 것이고 그런 남성들이 많은 사회는 더욱 따스하지 않을까.

정화식 대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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