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으악새 슬피 우우~니~."
깜빡 졸고 있던 나는 낯익은 가락에 설핏 잠이 깨어 고개를 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쉰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몇 년간 4호선 전철을 타고 다니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마주쳤던 그 시각장애인 아저씨였다.
"가으을 이~인 가아아~요~."
차창 밖에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건만, 그 아저씨는 예나 제나 오직 한 계절을 노래할 뿐이다. 지난 봄 이사간 이후 처음 이용하게 된 안산행 전철 안에서 모처럼 듣는 그 흘러간 가요는 부르는 이의 노래실력에 관계없이 언제나처럼 정겹고 반가웠다. 나는 얼른 일어나 주머니에서 잡히는 대로 잔돈을 꺼내어 아저씨의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땟국에 전 거무튀튀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보이지 않는 눈을 내쪽으로 돌리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아저씨는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으며 계속 까마귀 청으로 '으악새'를 우악스럽게 불러제끼며 나아갔지만 돈을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 노래 자체로 말하자면 가창력이나 목청이 들어주기 괴로운 수준인 데다 사시사철 그 가요 한 가지밖에 부르질 않으니 노래 들은 대가로 돈을 주기란 별로 내키지 않을 게 당연하다. 그냥 단순한 적선을 유발하는 데도 어느 정도 기술이 필요한가 보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그 아저씨의 노래는 그래도 때마다 내게 묘한 감동을 주곤 한다. 기교 없는 그 투박한 노래가 어느 명창의 것 못지않은 호소력을 지니고 우리네 삶의 애환을 전달하는 것이다.
마침 그 차량이 마지막 칸이라 아저씨가 맨 끝까지 갔다가 더듬거리며 몸을 돌려 다시 내 앞을 지나갈 즈음이었다. 잠시 멈춰 선 전철에 검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중년 신사가 올라탔다. 신사는 옆을 지나치는 으악새 아저씨를 밀어제치더니 다짜고짜 부르짖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민주 선진 합시다. 안 믿으면 공산 후진이요!"
구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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