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의 탄생/바네사 R.슈와르츠 지음/노명우·박성일 옮김/마티 펴냄
"파리 사람들처럼 오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아침부터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파리에는 늘 구경거리가 넘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쾌락 추구에 빠져 있다."
카셀의 관광안내서는 파리를 방문한 관광객 뿐만 아니라 파리 사람들도 프랑스의 수도에서 쾌락을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는 풍문을 확인시켜준다.
'구경꾼의 탄생'은 도시생활의 구경거리화와 대중문화 출현의 상호 관련에 주목한다. 이 책은 19세기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 레저 산업의 중심지였던 파리를 통해 '구경꾼으로서의 소비자의 등장'이라는 도시적 삶의 특징들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제일 인기있었던 구경거리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시체'다. 1895년 4월3일자 '르 프티 주르날'은 쉬렌 지역의 센 강변에서 발견된 18개월된 여아의 시체를 보기 위해 전날 수많은 인파가 모르그에 몰렸다고 보도했다. 잇따라 강물에서 발견된 세 살짜리 여아의 시체가 같이 전시되자, 사람들은 '이들이 자매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시체를 보러 몰려들어, 전시 첫 나흘동안 1만명의 인파가 다녀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876년엔 살해된 토막시체를 전시해, 수십 만명의 구경꾼이 이를 보기 위해 모르그를 찾았다.
모르그는 공공장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를 보관하는 장소로, 익명성이라는 지극히 도시적인 특징을 대표한다. 누군가 죽었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은 결국 도시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유럽 다른 도시에도 모르그는 있었지만 유일하게 파리에서만 커다란 진열장에 시체를 전시해놓고 주5일동안 자유롭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대중매체는 이 시체를 둘러싸고 흥미진진한 보도를 계속해,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공무원과 대중매체는 신원미상의 시체를 확인하는 엄숙한 업무를 대규모의 다양한 구경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볼거리로 만들었다.
이 모르그 전시실은 19세기 파리의 특징적 풍경이었던 다양한 쇼윈도와 비교해볼 수 있다. 익명의 시체를 화젯거리로 변형시키고 많은 대중은 구경거리로 만들어진 이 시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것은 파리라고 하는 현실 자체가 지독히 선정적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파리는 도시 삶의 모더니티를 그대로 보여준다. 파리는 19세기 오스망화로 알려진 도시의 재설계를 통해 메트로폴리스의 전형이 됐다. 오스망화를 통해 4.5m 미만이었던 길은 사라지고 대로(大路)가 건설됐다. 도시를 관통하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대로는 '파리의 심장과 머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현대 도시의 즐거움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이 된 대로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대로를 중심으로 사치품 가게들이 넘쳐났고 쇼핑의 중심지가 됐다. 조명 기술의 개선과 유리 제조기술 덕분에 대로 주변의 백화점들은 새로운 구경거리를 만들어냈다.
또 파리의 대표적인 풍경 중 하나인 길거리 카페 역시 구경거리를 만들어냈다. 대로의 카페는 주변의 변화한 세계를 하나의 볼거리로 만들면서 동시에 볼거리와 이를 구경하는 관객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파리의 다양한 군중들은 정당하게 길거리를 차지하고 대로와 상업문화를 점령했다.
19세기 말 개관해 파리의 새로운 구경거리가 됐던 그레뱅 박물관은 현재 파리의 가장 오래된 상업 오락시설로,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현실을 밀랍으로 재현해 보여주는 밀랍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관심에 따라 전시품을 선보였다. 때로는 신문 삽화를, 때로는 소설 '제르미날'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부르조아 계층의 새로운 오락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제한된 장소를 재현함으로써 파리 상류생활과 서민들의 생활을 관음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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