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 30년 전 사람들은 이혼 사실을 드러내 놓기를 꺼렸다. 재혼 역시 감추고 싶어했다. 결혼에 대한 우리네 관념은 초혼(初婚)만을 인정했다. 재혼 여성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일부종사(一夫從事)를 목숨처럼 여겼던 유가적 가치관의 영향 탓이다. "좋은 말은 고개를 돌려 풀을 뜯어먹지 않고, 훌륭한 여자는 두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는다(好馬不吃回頭草,好女不嫁二夫男)" 는 중국식 정조 관념이 우리 의식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세종 때부터 여자의 재혼이 금지됐다. 1894년 6월에야 칙령으로 "과부의 재혼은 자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그 자유에 맡길 일"이라 해 그때부터 재혼이 허용됐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부정적 재혼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70, 80대, 아니 60대 이상 여성들 중에도 남편을 일찍 여의고 일평생 수절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가족 친지들은 그런 딸과 며느리를 가여워하면서도 당연시했다. 간혹 수절을 접고 재가한 여성은 평생을 죄 지은 사람처럼 풀 죽어 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통계청의 '2005년 한국의 사회 지표'는 한 시대 전 결혼 풍속도가 아득한 옛이야기로만 여겨지게끔 한다. 2004년 연간 혼인 건수는 31만900건으로 전년보다 6천 건 늘었다. 증가하던 이혼 건수는 13만9천 건으로 전년보다 2만8천여 건 줄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재혼이다. 2004년 재혼건수는 4만4천300여 건으로 10년 전인 1994년(2만2천700여 건)보다 2배나 늘었다.
○…재혼이 일상화된 시대가 됐다. 초혼남-재혼녀 커플 증가 등 재혼 풍속도의 변화상은 놀라울 정도다. 결혼정보업체들은 다투듯 재혼팀'실버재혼팀 등을 운영하고, 온라인 재혼 전문 사이트도 성황을 이룬다. 성공적 재혼 생활을 위한 가이드북도 쏟아지고 있다. 제2의 인생을 가꾸는 '앙코르 세대'에게 오히려 축하를 보낼 만큼 인식이 달라졌다.
○…2008년부터는 재혼 가정 자녀들이 부모의 성(姓)을 선택할 수 있게 민법도 개정됐다. 이른바 '초혼 이데올로기'는 퀴퀴한 구시대적 산물로서 사라질 판이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재혼을 '황금의 열쇠'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재혼 가정에는 인위적인 가족 관계 형성에 따른 갈등 요인이 내재돼 있다. 철저한 준비 없이는 다시 깨질 수 있다. 다각적인 '재혼 교육'이 필요해진 시대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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