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마술사 정권' 의 시곗바늘

마술사가 토끼 머리 위에 모자를 덮어씌운다. 얍! 하고 다시 모자를 벗기면 토끼는 비둘기로 변해 무대 위로 날아간다. 재주도 좋다. 재미도 있다. 그런데 마술 재주도 신통찮아 보이고 별 재미도 없어 보이는 '감투 마술'이 청와대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차기 지도자 만들기 감투 마술'이다. 국민 여론은 물론이고 여당조차 손사래 치며 등용을 반대하는 톡톡 튀는 젊은 측근에게 기어이 장관 감투를 씌워 주려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는데 그게 차기 지도자를 길러내기 위해서였다는 거다.

고만고만한 인물도 청와대에서 장관 감투만 씌웠다 내보내면 토끼가 비둘기로 바뀌듯 차기 대통령(지도자)감이 될 정도의 큰 인재로 바뀐다는 식이다.그렇다면 노무현 '마술사'가 씌워 주었던 장관 감투는 어느만큼 인기 있는 정치 스타나 차기 지도자 수준의 인재를 키워 냈는지 돌아보자.

집권 초기 오른팔(이광재) 왼팔(안희정) 하던 젊은 측근들에게 청와대 고위 비서직이란 벼락 감투를 씌워 주었지만 검은 돈부터 챙기다 한 명은 감옥에 있고 한 명은 정치적으로 사망 상태다. 대선 때도 지도자감이라며 대선 자금 관리책의 감투를 씌워 준 인물은 유죄 선고를 받은 범법자가 됐음에도 이번에 또 장관에 임명했다.

정동영, 천정배 같은 인물도 차기 지도자라며 장관 모자를 씌워 줬다. 그러나 두 인물 다 지난 총선 때 정 전 장관은 노인 폄하 발언으로, 천 장관은 강정구 감싸기로 동료 여당 후보 인재들을 대거 참패시키는 데 기여(?)했다. 정치적 감각이나 정책 결정의 정치적 타이밍 조정 능력이 낙제점이었던 경우다. 그뿐 아니다. 멀쩡한 인물의 대학총장, 교수들을 불러다 장관 감투 씌운 뒤 국회의원 선거에 내보냈다가 낙마시킨 케이스도 대구에서만 벌써 두 건이다.

차라리 노무현이란 마술사의 모자를 안 써 보고 나왔더라면 당선되거나 낙마해도 그처럼 참담한 패배로 체통을 상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사례들이 이쯤 되면 모자 덮어쓴 토끼 쪽보다 모자 씌운 쪽에 더 문제가 있다.

노무현 지도자는 차기 지도자 키우기 전략에서 두 가지 자기 도취적 독선에 빠져 있어 보인다. 하나는 자기가 씌워 주는 감투를 쓰고 나면 병장도 육군 소장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위력 있으리라고 믿는 물빛 모르는 판단력이다. 내가 모자 씌워 내보낸 장관 정도면 무조건 국민은 도장 꽉꽉 찍어 국회의원도 만들어 주고 차기 대통령으로 뽑기도 할 거라는 오만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또 하나는 여당 동지들이 밥 초대 자리에도 안 갈 만큼 반대하는 인물을 기어이 등용하는 오기 찬 모습과 잇따른 나 홀로 인재 발탁의 실패를 살펴볼 때 인물을 보는 안목도 별로인 것 같다. 관객(국민)들 입장에서는 신통찮은 마술사가 펼치는 모자 마술은 재미가 없다.

더구나 모자 마술이 토끼를 비둘기로 만드는 그야말로 재미를 위한 마술이 아니라 한 나라의 국정 미래와 국민의 민생이 걸리는 인재 발탁에 관계된 거면 가볍게 넘길 일이 못 된다. 장관 자리는 코드 맞는 아마추어 인재의 몸 푸는 자리나 테스트용 줄기세포 실험실 같은 곳이 아니다. 지금의 나라 형편 역시 대통령이 장관 임명권을 이용해 차기 지도자 키우기 게임에나 신경 쏟을 경황이 못 된다.

오죽하면 80% 가까운 국민들이 너도 나도 시계만 쳐다보며 노정권의 시곗바늘은 왜 이렇게 더디게 돌아가느냐고들 할까. 그 말들 속에는 모자 마술이 오래 이어질수록 또 감방 갈 사람, 낙마할 사람들이 정권을 쥐고 흔들까봐 불안하다는 민심이 숨어 있다.마술사는 모자 속의 토끼보다 관중의 가슴 속에 감춰져 있는 속 민심부터 알아야 진정한 프로 마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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