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대중심리/빌헬름 라이히 지음/황선길 옮김/그린비/2만3천원
오스트리아 빈 대학 의학부 학생으로 22세 때 프로이트를 처음 만난 빌헬름 라이히(1897~1957년).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진료소에서 임상조수로 근무하며 정신분석학자로 촉망을 받는다. 그러나 곧 인간의 심리구조를 미시적으로 파악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극복하고 거시적 차원, 즉 역사적·사회적 인식과 연결시키고자 한다. 그의 노력은 정신분석학을 어머니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을 아버지로 하여 '성경제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라이히의 성경제학 연구의 결정판이 바로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년)'다.
라이히는 1930년대 유럽에 몰아닥친 광기 어린 파시즘을 경험한다. 그는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왜 열광하는지 분석한다. 히틀러가 속이거나 위협한 것도 아니고, 독일 중산계층이 무지하거나 환상에 빠져있어서도 아니었다.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고, 독재정치를 펼쳤다.
당시 유럽 좌파들이 대중들의 무지와 환상을 한탄하며 또 히틀러의 정신이상 운운하며 허둥대는 사이 라이히는 히틀러와 대중들의 성격구조 사이의 심리상태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가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분석하며 도출해낸 동일한 성격구조의 특성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과 수용, 복종이 얽혀있는 태도'로 요약된다. 파시즘이 히틀러 개인의 정신병리적 행동이 아니라 대중의 비합리적 성격구조의 표현이라는 점을 논증한다.
"나는 자신의 성격구조 속에서 파시스트적 감정과 생각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성격분석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적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인민대중에 의해 탄생되고 대변됐다."
그렇다면 이같은 비합리적 심리구조는 왜 생기는 걸까. 라이히는 이에 대해 권위주의적 가족 이데올로기와 인종이론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 국가가 원인이고, 그 밑바닥에는 '성의 억압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즉 성의 억압이 파시즘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성욕에 대한 도덕적 억압의 목적은 고통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 질서에 적응하고 그것을 잘 참아내는 말 잘 듣는 노예 같은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중들의 성을 자유롭게 해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노동민주주의'로 "노동의 생물학적 활동 욕구가 충족되고 발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동을 설계해 성적 에너지를 노동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라이히의 이론은 당시 유럽지성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한동안 잊혀졌다. 그러다 프랑스 68혁명 이후 드골의 권위주의 체제, 1990년대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이 부상되면서 그의 이론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린 '일상의 파시즘'이 폭넓게 논의되고 있는 최근 국내학계의 문제의식과 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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