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당·황당" 학교 운동장이 골목길로 변해

이정미(34·여) 씨는 얼마 전 남구 대봉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학교 운동장이 인근 주민들의 보행로로 변했다는 것. 이 씨는 자녀가 농담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엔 설마 했지요. 그런데 다른 학부모도 비슷한 얘길 들었다고 해서 확인만 하자는 심정으로 학교를 찾았어요."

학교 정문으로 들어선 이 씨는 기가 찼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데도 수십 명이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후문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오토바이를 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운동장을 질주하는 음식점 배달원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학교인지 길거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

운동장이 '길거리'로 전락한 사연은 황당했다. 학교 담벼락을 마주하고 들어서고 있는 아파트가 주범이었다.

한국주택공사가 짓고 있는 아파트가 학교 옆 100m 남짓한 골목길을 차지하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이 학교 운동장을 골목길 대신 통행로로 이용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수십 년 동안 주민들이 이용했던 길을 하루아침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파트 사업자에 팔아넘기는 행정기관은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골목길 일부가 대구시교육청 소유 부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부형들의 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대구시가 도시 저소득층 주민의 거주환경개선을 위해 교육청 부지를 주공 측에 무상양여하도록 협조를 부탁해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이 씨를 비롯해 이 학교 학부형 10여 명은 지난달 24일 남구청을 항의 방문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행인들 때문에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

남구청 한 관계자는 "주공 측과 협의해 아파트 단지 내로 이동하는 길을 만들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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