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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학교가자!" 손녀 안쓰러워 등·하교 돕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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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보면 엄마 생각이 나요.'

경북 영주시 봉현면 봉현초교. 전교생 50명, 1학년 전체가 7명인 이 곳에선 도시 학교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풍경이 매일 펼쳐지고 있다. 보청기를 낀 할머니와 부모를 잃은 손녀, 학교에 다닐 엄두를 못 냈던 장애아와 그 엄마가 한 여교사의 헌신으로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

1학년을 맡은 강남순(39.여) 교사가 해리(7) 양과 할머니(78)를 만난 것은 지난 3월 이 학교로 전근 온 첫 날이었다. 할머니는 별났다. 시골길과 논두렁을 걸어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손녀의 등·하굣길을 매일 함께 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운동장 구석에서 손녀를 기다렸다. 급식시간에는 보자기에 싸온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며칠 그러다 말겠거니 했던 할머니의 등교는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강 교사가 윽박지르다시피 말려도 보았지만 보청기를 낀 할머니는 도통 막무가내였다. 그 뒤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해리 부모님이 오래 전에 집을 나가서 연락이 안 된대요. 현재 기초수급자로 형편도 어려운 데다 할아버지까지 몸져 누웠으니... 할머니 등을 떠다 밀기에는 손녀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와 닿았습니다."

결국 할머니 전용 책상이 손녀 옆에 마련됐다. 할머니는 수업시간 동안 보조 교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 연필을 떨어뜨리면 주워주고 선생님이 부르면 옆구리를 쿡 찔러 준다. 체육시간에는 당연히(?) 운동장에 따라 나선다. 봄 야외 수업 때는 아이들 틈에 끼어 단체사진도 찍었다. 1주일에 한 번, 해리가 '방과후 학교' 수업으로 바이올린을 배울 때면 하교 시간이 늦어지는 줄도 모르고 대견하게 손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해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우리 집 기둥이야."

해리에게 선생님은 엄마나 다름 없다. 강 교사는 아직 한글을 못 깨친 해리를 위해 매주 화·금요일 오후 개인 지도를 해 주고 있다. 머리도 자주 땋아주고 얼마 전에는 500원짜리 예쁜 반지도 사 줬다. 집에서 만든 간식을 들고와 함께 먹기도 한다.

강 교사는 "시골 학교 대부분 학급의 절반 정도가 해리와 같은 조손 가정인데다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도 적잖아 보조교사 등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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