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의 표정들이 조금은 어둡다. '비가 많이 온다는데 제대로 체험할 수 있을까?' '차라리 오지말 걸 그랬나?' 걱정들이 얼굴에 묻어난다.
하지만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 자락 모싯골마을의 하늘은 용케도 울음을 참고 있다. "휴! 다행이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에 논으로 달려간다. 놀란 개구리들은 물 속으로 후다닥 뛰어들고 소금쟁이들도 잰걸음으로 도망가기 바쁘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보기 힘들어져 마을에 딱 하나 남았다는 '골동품' 못줄을 따라 길게 한 줄로 늘어선다. 시골에 부모님이 계셔서 농사일에 이골이 났다는 박호국(45·대구 북구 국우) 씨가 두둑에 올라서서 코흘리개들에게 요령을 가르친다. 모라곤 난생 처음 쥐어보는 정엘리야(8·대구 북구 대현동)와 박준서(12·대구 달서구 장기동)는 바짓가랑이가 젖는 줄도 모르고 '모내기 삼매경'에 빠진다. 과자 참이라도 내놓아야하나!
이앙기(移秧機)로 했으면 10분도 채 걸리지않을 작은 논이지만 워낙 '왕초보'들인지라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모양도 삐뚤삐뚤, 모들이 서 있는 모습이 뱀이 기어가는 듯 하다. 그래도 박성률(46) 이장은 천하태평이다. "모라는 게 말입니다, 아무렇게라도 심어놓으면 잘 자라요. 걱정들 마이소."
산나물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뒤 캠프파이어의 불똥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아이들은 나락을 까느라 디딜방아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신명나는 사물놀이에 도시에서 가져온 스트레스는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진다.
후두둑 후두둑. 결국 굵은 빗방울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시꺼멓게 찌푸린 하늘에선 벼락이 치지만 걱정은 없다. 마을 어르신들이 미리 설치해둔 천막 안은 아늑하기만 하다. 숯불 위에 지글지글, 고소한 삼겹살과 시원한 동동주 한 잔..... 산골마을의 밤은 달콤하게 익어간다.
전날 밤 황토한증막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들 기도를 올린 덕분일까. 평화로운 휴일 아침, 밥 짓는 연기는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구름은 저 멀리 자취를 감춘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달려간 곳은 진남역. 폐탄광 철로를 활용한 '철로자전거'에 몸을 싣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레일 위를 미끄러져 가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경북 8경'의 으뜸이라는 진남교반의 경치가 탄성을 자아낸다. "영차 영차, 뒷차가 따라온다. 빨리 달아나." "아빠, 빨리 좀 밟아요."
'철길 옆 산딸기는 어떨 맛일까?' 잠시 궁금증에 빠진 사이 다시 돌아온 마을에는 구름 걷힌 주흘산이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비온 뒤라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다 보일 듯하다.
"날씨가 맑으면 등산객들 참 먹는 모습도 다 보인답니다." 박 이장의 말에 꼬마들은 천체망원경앞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동네 아낙들은 두부체험 준비에 바쁘다.
닭백숙 '점심값'을 하느라 땀 흘린 사과밭에서는 모두들 농부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듯한 눈치다. 한 마리씩 개구리를 손에 쥔 이승환(8·대구 북구 구암동)이도, 김영민(8·대구 수성구 만촌동)이도 "농촌을 사랑해달라."는 박 이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벼들아 잘 자라렴, 사과야 무럭무럭 크렴. 가을에 꼭 다시 만나자."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후원 :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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