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태수 칼럼] '역주행' 지금이라도 멈춰야

요즘 우스갯소리는 예사롭지 않다. 세상이나 사람을 비트는 메시지가 날카롭다. 비판의 강도도 높다. 최고 권력자를 향한 농담도 적지 않으며, 그 속에는 어김없이 비수(匕首)가 들어 있다. 불만을 가지거나 성난 사람들에게는 그 농도만큼 입에 거품을 물게 하기도 한다. 연령과 신분을 뛰어넘는 주고받기도 '참을 수 없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의 귀'다. 하지만 그 뒷맛은 쓰게 마련이다.

최고 권력자에 대한 우스갯소리는 '소 한 마리 바치기' '밥솥과 밥 짓기' '자동차 운전' 등에 빗댄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역대 대통령에게 소 한 마리를 바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농담은 분명 야유(野遊)다. 그 반응은 '새마을 현장으로 보내' '모두 불러 잡아먹자' '다른 사람 아나 모르나' '차남에게 보내' '한 마리 더 줘' 등이다. 오래된 농담이어서 현직 대통령은 빠졌고, 초대 대통령도 제외돼 있다.

'밥 짓기'에 얽힌 농담은 이렇다. 한 대통령이 큰 솥을 샀다. 그 다음 분은 쌀밥을 한 솥 가득 지었다. 그 뒤의 분은 배가 불렀다. 그 뒤를 이은 분은 밥을 거의 다 먹어 버렸다. 그 다음 분은 누룽지까지 긁다가 솥바닥이 뚫어졌다. 그 다음 분은 가까스로 전기밥통을 마련했으나 그 뒤의 대통령은 386코드에 잘못 꼽아 탈이 났다는 게 그 골자다.

자동차 운전 버릇에 비유한 유머는 어떤가. 어느 분은 '난폭 운전', 어느 분은 '취중 운전'이다. 또 어느 대통령은 '무면허 운전'이었으며, 지금은 '역주행 운전'이다. 좀 지나치다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쑥떡방아를 찧으며 공감대를 이루기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이르러 미숙과 독선(獨善)의 정치로 그렇다는 대목에 당사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 같지는 않다. 별로 새롭지도 않은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이 하도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어 해본 소리쯤으로 봐 주기 바란다.

5·31 지방선거 이후의 정치판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달라지고 좋아질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는 이상으로 우려되는 점들이 많아 걱정이다. 특히 엇박자를 보이는 정부·여당은 배를 어디로 몰고 가는지,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최고 권력자는 더욱 그렇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임을 알고 있기나 한지, 여전히 '역발상' '역주행 운전'을 멈출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5·31 '참패'를 측근까지 '탄핵'이라는 극언을 했지만, 민심 이반(離反)엔 아랑곳없이 '회군(回軍)은 없다'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어 실망과 분노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갈 길은 아직 적잖이 남아 있다. 모두가 더 못살게 됐다고 아우성인데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왜 버림받았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고 책임지려는 '궤도 수정'만이 최선의 길이며, 경제 살리기가 발등의 불일 텐데, 그런 움직임은 안 보인다. 경기선행지수가 1년8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경기시사지수도 줄줄이 떨어진다. 이런데도 세금이 다락 같이 오르고, 변명에만 급급하다면 앞으로 1년 반 이상 나라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커서 성글지만 하나도 잃지 않는다)'이라는 노자(老子)의 말이 새삼스럽다. 더구나 이 그물은 덫이 아니라 만물을 있게 하는 둥지다. 그러므로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지나치거나 팽개쳐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하늘을 거스르고, 그 마음을 거스르게 된다. 맹자(孟子)도 '인천지존작야 인지안택야(仁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어질음은 하늘이 준 높은 벼슬이며 사람이 편히 사는 집)'라 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이 진리마저 팽개치고, '하늘이 준 벼슬'과 '사람이 편히 사는 집'을 그르친다면 천심 같은 민심의 분노를 사고, 혼란과 갈등만 부르게 되지 않을까. 양극화 심화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서민 경제를 일으키고, '내 탓'을 들여다보며, 입으로만 외쳐 온 개혁을 치밀하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이제라도 역주행을 멈추고 정상 주행으로 방향을 바꾸는 대통령을 볼 수는 없을까. 비하 일색의 농담을 넘어 더러는 칭송받는 풍경들을 보고 싶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