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이 또 바뀌었다.
창당한 지 2년 6개월 동안에 아홉 번이나 얼굴이 바뀐 셈이 된다.
평균 재임 기간이 4개월. 웬만한 아줌마 계모임 총무나 초등학교 동창회장 임기보다도 짧은 기간이다.
취임식 하고 집무실 출근 코스 익히고 기자회견에다 폭탄주 회식 몇 번 하고 나면 짐 싸야 할 정도의 기간이다.
국회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여당의 당의장이라면 권력이 한곳에 집중돼 있는 집권 여당 대통령제도 아래서는 사실상 '왕의 남자'나 다름없는 실세다.
그만큼 안정적이냐 흔들거리느냐에 따라 국민의 생활과 국가의 경제'외교'안보, 정체성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즉각 끼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중요하고도 막강한 자리가 왜 우왕좌왕 흔들거렸는지 교체 사유를 들여다보자. 초대 의장은 '노인은 투표장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밀려났고 두 번째 의장은 부친의 친일 논란으로 밀려났다.
세 번째 역시 개혁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뜯어고치려다 밀려났다.
나머지도 임시의장 두 사람을 빼고는 모두 재보궐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유 등으로 밀려났다. 어느 한 사람 온전한 이유로 물러난 사람이 없다.
그러니 자기 집안(열린우리당) 일뿐만 아니라 나랏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어느 신문은 '비운의 발자취'라는 기사 제목을 붙였지만 앞뒤 속사정을 보면 결코 비운(悲運)이 아니다.
아홉 번째 의장(김근태)의 말마따나 '자업자득'이다. '노인 폄하' 교체 사유는 일부 개혁세력 특유의 독선과 무교양 탓이요, 부친 친일 교체 사유는 과거사 캐기로 보수를 흠집 내려다 역풍을 맞은 게 진짜 사유다. 국가보안법 사유 또한 안보와 정체성을 흔들려던 좌파적 개혁 노선이 민심에 부딪혀 깨진 경우다. 선거 참패 또한 천심(天心)을 읽을 줄 모르고 떠나는 민심을 잡을 능력이 없는 '무능' 탓이 진짜 사유였다.
뒤늦게나마 아홉 번째 신임 의장은 '자업자득을 인정한다'고 몸을 낮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말로는 몸 낮춘 아홉 번째 '왕의 남자'에게도 큰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번에도 임기가 넉 달을 못 넘길 거란 짐작이 아니라 바뀌어 봤자 우리당과 나라의 앞길이 뻔히 내다보여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노 대통령과 방향을 함께할 것'이란 한마디 때문이다. '왕의 남자'들이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은 토막 임기로 밀려난 진짜 이유들 중 노인 폄하 발언 같은 입 가벼운 죄로 물러난 것 등을 빼고는 사실상 대부분 '왕'의 탓이 더 컸다.
과거사 캐기라는 정치적 노림수로 제 식구의 친일 논란에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거나 어느 전직 당의장의 비판처럼 '당의장 하던 사람을 장관 감투 씌워 정부로 데려가는 대통령의 인사가 당의 지도력이 안착할 틈을 주지 않고 우왕좌왕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왕의 탓이 적지 않다.
더구나 두 번의 선거 참패는 누가 뭐래도 20% 지지율에 맴도는 지도자의 통치 방향에 책임과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홉 번째 새 의장은 그런 왕의 방향을 '함께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전 국민의 사랑과 존경 속에 즉위 60주년을 맞은 태국의 푸미폰 국왕의 모습이 새삼 부럽고 돋보인다.
60년을 한 사람이 이끄는데도 '저분이 죽고나면 나랏일을 어쩌지' 걱정한다는 백성과 2년 반 사이 9명이 나섰는데도 1년 8개월 남짓 남은 세월이 지겹고 지겨워서 온몸이 뒤틀린다는 백성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서너 달 만에 한 번씩 바뀌는 우리당의 왕의 남자들은 알아야 한다.
누가(Who) 하느냐 보다 어떻게(How) 하느냐가 그 첫째 비결이요, 왕의 비탈길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비결이란 점을-.
김정길 명예주필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