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시즌…'축구영화' 한 편 어때요?

드디어 휘슬이 울렸다. 둘레 69cm의 팀가이스트(월드컵 공인구)를 두고 푸른 그라운드에서 22명의 전사들이 펼치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65억 지구촌 인구의 눈과 귀는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 독일로 향해 있다.

월드컵을 정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축구 열풍. 그러나 영화는 축구를 홀대해온 경향이 짙다. 영화산업의 중심에 할리우드는 남미와 유럽 중심의 축구보다는 더욱 격렬한 액션이 포함된 스포츠 종목을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축구는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가 돼왔고, 이를 통해 '감동', '화합' 등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축구, 희망을 이야기하다

▶기적을 일궈내다 전쟁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독일에 기적을 안겨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 우리에게도 남달리 기억되는 그 해 독일 대표팀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독일국민들에게 선물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손케 보르트만 감독의 영화 '베른의 기적(2003.독일)'은 한 탄광촌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쟁 이후 파괴되었다가 힘겹게 재결합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와 고전하던 독일 축구팀이 극적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을 교차시킨다.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가족과 불화를 겪던 아버지는 전쟁과 포로수용소의 일화를 들려주며 가족의 마음을 열고, 그 사이 독일팀은 파란을 거듭하며 결승전에 진출한다.

▶철창 너머에 희망이

축구는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 갇혀 있는 주인공들의 외부를 향한 소통수단이 되기도 한다. 배니 스콜닉의 '그들만의 월드컵(2001.영국·미국)'은 진정한 승리는 페어플레이에 있다는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며 또 다른 희망을 전한다.

경찰 구타죄로 감옥에 온 축구스타 대니. 교도소장은 그에게 교도관팀을 지도하도록 명령하고 대니는 교도관들의 연습을 위해 죄수팀을 만들어 경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두 팀간의 기상천외한 시합이 벌어지고 대니는 죄수팀의 주장을 맡아 자신을 희생한다.

존 휴스톤 감독의 '승리의 탈출(1981.미국)'은 2차 대전 중 독일군 수용소에 수감된 연합군 포로팀과 독일군의 축구 시합을 그린다. 나치장교들은 선전용으로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포로 대표팀과 자신들의 정예 축구팀과의 경기를 주선하고 연합군 포로들은 탈출 수단으로 나치의 이 제안에 동의한다.

방성웅 감독의 '교도소 월드컵(2000.한국)'은 재소자들을 위한 월드컵이 열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교도소 안에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에 웃음을 곁들인다. 잔형 감형, 사회로의 1주일간 특박, 특별 형집행정지 등 달콤한 포상이 내걸린 '세계교도소 월드컵'에 원주교도소 재소자들이 '희망팀'을 만들어 선발전에 출전하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축구는 절망밖에 없어 보이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것을 마법처럼 실현시킨다.

▶고난 뒤 숨은 희망

축구가 승패만을 가리는 스포츠라면 승부를 결정짓는 '골'만 있으면 된다. 대니 캐논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골(2005.미국)'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한 소년의 고된 성장통을 통해 축구의 본질을 일러준다. 화려한 골보다는 패스를, 결과보다는 과정을 강조하며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아버지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온 멕시코 출신 산티아고.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강요를 뿌리치고 산티아고는 6천 마일을 날아 입단테스트를 받기 위해 영국 뉴캐슬에 도착한다. 그러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친구의 선수 생명이 한순간에 끝나는 것을 목격해야 하고 축구선수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죽음마저 견뎌야 한다. 산티아고는 가시밭길의 고난을 견디며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축구가 상상을 만나면

골그물을 뚫는 강력한 슛은 없을까, 하늘에서 내리 꽂는 공중제비 슛이 있다면? 주성치 감독의 '소림축구'(2001.홍콩)는 축구에 무술을 접목시켜 우리의 상상력을 충족시켜준다. 이제는 퇴물 취급받는 왕년의 축구 스타가 소림에서 발차기 능력을 연마한 '씽씽'과 함께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소림사 동지들을 모아 축구팀을 결성한다. 축구대회 우승까지의 과정을 다루며 팀웍 만들기, 불우한 시절을 견뎌낸 뒤 복수에 성공하는 무협 영화의 역전극 등이 코믹 터치로 담겨 있다. 알랭 샤베의 '디디에'(1997.프랑스)는 더욱 엉뚱하다. 개가 사람으로 바뀐다는 기발한 발상을 끌어들였다. 어느날 공원에서 아이들의 공을 받아 멋지게 패스하는 디디에를 보고 쟝은 그를 축구선수로 출전시키고 디디에는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다시 개로 변한다.

거린다 치다의 '슈팅 라이크 베컴'(2002.미국·영국·독일)은 축구가 남자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깬다. 베컴의 열렬한 팬이자 축구 선수를 꿈꾸는 인도계 영국 처녀 제스. 그녀에게 세상에서 축구와 베컴처럼 매력적인 목표는 없다. 보수적인 부모의 반대, 그리고 소년이 아닌 소녀라는 점에서 겪는 고뇌와 사회적 억압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홀리 골드버그 슬로언의 '빅그린'(1995.미국)은 축구가 어떻게 이들 모두에게 내면의 억압을 깨부수고 당당하게 세상과 맞설 용기를 주게 되었는가를 디즈니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보여준다. 이민용 감독의 '보리울의 여름'(2003.한국)은 신부님과 스님이 이끄는 시골 소년 축구단의 경쟁과 단결을, 저지 도마라스키의 '천국의 장원'(1993.호주·폴란드)은 다운 증후군 장애인들이 축구를 통해 마음을 전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키엔츠 노부 감독의 '컵'(1999.부탄·오스트레일리아)은 히말라야의 사원에까지 불어닥친 월드컵 열기와 종교, 축구를 결합시켰고 보르하 만소 감독의 '레알'(2005.스페인)은 마음 속에 레알 마드리드를 품고 사는 세계 다섯 도시 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니엘 고든 감독의 다큐 영화 '천리마 축구단'(2001.영국)은 1966년 영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까지 진출한 북한 축구대표팀의 과거와 현재를 담으며 당시 북한 선수들이 처했던 미묘한 정치적 상황에 주목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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