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규목 작 '고향'

고향

최 규 목

6월 땡볕 십수 날을 품앗이도 하고

아비에게 배운 쟁기질도 했다

열두 살에 집 나간 억이가 시신으로 돌아오고

순이에겐 흉흉한 소문이 들려와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거친 삶을 독주로 녹이고

분내 나는 살결 부벼도 보았다

포효(咆哮)하는 열정을 감내할 수 없어

자식새끼 도열하여 회초리도 들고

석빙고 같은 싸늘함도 배웠다

돌아보지 않고 살려고 했건만

내 마음의 반은 언제나 그곳

토우처럼 엎드린 산자락에 머물고…

생솔가지 사이로 갈가마귀 날으고

알밤 줍는 다람쥐 새벽을 열면

바소쿠리 지게 진 농부가 정답다

기계천 지나 돌막골 오르면

무덤 속 아버지 소줏잔 내미는

그곳은, 언젠가 돌아갈 고향

지금도 40대 이후에 있어서 '고향'은 삶의 영원한 뿌리다. 보리가 피어나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6월이면 그들의 가슴에는 '고향' 들녘이 풍경화로 다가온다. 그들은 궁핍한 고향을 스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나온 세대다. 그리고 도시의 '분내 나는 살결 부벼도 보았'고, '석빙고 같은 싸늘'한 도시적 삶의 기술도 배웠다. 이른바 출세를 하였다. 그래서 '돌아보지 않고 살려고 했건만' 그들의 마음은 고향의 '토우처럼 엎드린 산자락에 머물'기 일쑤다.

고향을 향하는 도시인의 간절한 마음은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회한이 아니겠는가.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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