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상환 회피나 탈세 등 목적으로 명의신탁 제도를 악용했다면 나중에 원상 회복을 주장하며 소유권 이전을 요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부동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타인 명의의 부동산 거래를 일종의 관습으로 봐 효력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와 정면 배치되는 이번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잘못된 관행을 강력비판하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해 법원 안팎에서도 파문이 예상된다.
15일 대법원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2단독 이종광 판사는 9일 부동산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외삼촌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넘긴 박모씨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이전하라"며 정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불법적 목적의소유권 이전에 대해 명의 회복을 요구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경영하던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고 채권자들에게 주택·대지 등 부동산이 강제집행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외삼촌과 명의신탁 약정을 맺고소유권을 넘겼다가 상황이 나아지자 지난해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원고가 부동산의 실체적 소유권을 갖고 있는지, 불법원인에 따른 재산 급여 또는 부당이득의 대상인 명의신탁 부동산에 대해 반환 청구가 허용되는지 살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판사는 A4용지 48쪽 분량의 긴 판결문을 통해 명의신탁의 문제점과 이 제도의 폐해를 없애려고 도입한 부동산실명제, 두 제도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꼼꼼히 따졌다.
그는 "대법원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부동산 명의를 신탁하는 경우는 불법원인급여가 아니고, 양도소득세 회피 방법으로 명의신탁한 것이라도 무효라고 할 수없다는 견해를 적용하고 있다"며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가 법원에 의해 유지된 명의신탁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도입한 부동산실명제가 시행 10년이 넘어가지만 대법원은 명의신탁의 유효성에만 집착해 신탁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원은 이름을 빌린 사람과 빌려 준 사람 사이에 누가 보호받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부동산 소유권을 대내·대외적으로 나누는 세계에 유례 없는 이론이 나왔지만 명의신탁 제도는 후세에 물려줄 자랑스런 유산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한편 이 판사는 판결문 말미에 "수천억원의 형사추징금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이재산이 29만원 밖에 없어 추징금을 납부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 자식들은 수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이다"고 질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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