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변조 방지 주민등록증 '무용지물'

주민등록증의 위·변조를 원천 봉쇄하겠다며 정부가 수백억 원을 들여 지난 1999년 도입한 플라스틱 주민증이 잇따르는 위·변조 사건으로 인해 7년 만에 '휴지조각' 신세가 됐다.

이런 가운데 행정자치부는 새 주민등록증 도입 7년여만에 또다시 새 주민증 교체사업을 올들어 본격화, 재정낭비 논란을 부르고 있다.

15일 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구속된 김모(44) 씨는 중국 내 신분증 위조조직을 통해 위조된 주민증을 다량으로 사들인 뒤 위조 신분증을 이용, 휴대전화를 할부구매하고 이를 다시 되팔아 1천여만 원을 챙겼다.

사건을 수사한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진짜 주민증과 비교해도 육안으로는 전혀 위조 여부를 식별하지 못할 만큼 가짜 주민증이 정교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주민등록증 위·변조 사범 검거 건수가 지난 2002년 240건이던 것이 2003년 300건, 2004년엔 372건으로 2년 새 55%나 급증했다. 대구 경우도 2004년 8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15건, 올 들어서도 15일 현재 6건이 발생했다.

이렇듯 위조를 막겠다고 450여 억 원을 들여 교체한 주민증이 '걸레' 신세로 전락하자 대구시내 8개 구·군청은 수천만 원을 들여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 기기까지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 달성군은 이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주민등록증 위·변조 감식기' 12대를 도입, 군청과 읍·면사무소에 설치했다. 위·변조 주민증을 이용한 신분도용이나 재산권 침해 등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

대구 수성구청도 2천250만 원을 들여 25대의 감식기를 올해안 구청과 각 동사무소에 설치할 예정이며, 중·동·북구청은 앞으로 추경예산을 확보한 뒤 감식기를 도입할 계획이다.

달성군청 한 관계자는 "위·변조기술이 워낙 정교해지다 보니 가짜와 진짜를 육안으로만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라며, "가짜 주민증으로 인감증명원이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은 뒤,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 챙기거나 휴대폰 등을 구입하는 사례가 적잖은데 감식기가 어느 정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감식기 대당 가격이 88만~90만 원을 호가하는 바람에 일부 '돈 없는' 구청들은 감식기 구입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등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구 남구청 한 관계자는 "남구지역 13개 동사무소와 구청에 각각 1대씩 감식기를 들여놔야 하는데 1천여만 원의 돈을 어디서 구할지 고민"이라며 "중앙정부의 실수를 결국 지방정부가 뒤집어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최근 전자칩이 장착된 새 주민증 사업을 부랴부랴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새 주민증 연구용역이 지난 4월 끝나면서 조만간 주민증 교체에 나서겠다는 것. 7년 전 수백억 원을 들여 3천500만 장을 만든 '국책 프로젝트'가 헛돈만 날린 '졸속 작품'임이 확인된 것.

행자부 주민제도팀 최정례 사무관은 "현재 플라스틱 주민증에 대한 위·변조 피해가 급증, 부득이하게 새 주민증 교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새로 나올 주민증은 무형광 재질이라 형광램프를 비추면 발광하지 않아 육안으로도 쉽게 가짜를 가려낼 수 있고, 레이저인쇄를 통해 화학약품으로도 지워지지 않아 가짜 주민증은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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