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서 낭만을 마신다."
좀 거창하지만 실외 주점에서 만난 한 애주가의 말이다. 이맘때면 실외 주점의 로망이 시작되는 시기. 술집마다 야외 술판을 차려놓고 술맛을 잊지 못하는 손님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도심 여름밤 속 또 다른 풍경인 야외 주점으로 향했다.
지난 12일 오후 10시 서부정류장 인근 한 막창집. 실외에 마련된 술판에는 빈자리를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겐 월요일이란 요일도 큰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글지글 희뿌연 고기 연기 속에 그들의 술잔은 채워지기가 무섭게 비워진다.
직장 동료와 소주잔을 부딪치는 최모(40·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씨는 이미 '홍당무'가 되어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실내에서 술을 마셨다는 최 씨는 오늘은 왠지 바깥이 끌렸다고 했다. 최 씨는 "실외에서 마시는 게 서민적이고 정겹다."며 웃음을 보인다. 옆에 자리한 김모(39·대구시 북구 침산동) 씨가 목소리를 높이며 거든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굳이 장소를 따지지 않잖아요. 하지만 확 트여있으니까 술맛이 저절로 나네요."
시간이 갈수록 실외 술판은 더욱 시끌벅적해진다. 그만큼 사람들의 취기가 올랐다는 증거. 애꿎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가 하면 서로 박장대소하며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누구 하나 인상을 찡그리지는 않는다. 이게 야외 주점의 매력이다. "술 마시는 공간으로 실외공간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주장하는 회사원 김난희(39·여·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씨. "일단 확 트여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요. 술 마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탈인데 갇힌 공간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트인 공간이 더욱 좋잖아요." 친구 공경희(40·여·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씨도 "일단 갇힌 공간은 답답하고 싫다."고 끼어든다.
이들은 서로 각자 일하다 보니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김 씨는 "옛날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 술을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한 차례도 어렵다."며 바쁜 일상을 한탄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일찍 헤어질 리 없다. 이들은 "2차로 여자끼리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 확 풀고 갈 거다."라며 입을 모았다.
대구시 남구 영대네거리 모퉁이에 자리한 한 호프집. 술집 앞 노상에 간이테이블과 의자가 촘촘히 놓여 있다. 직장인 권모(26·대구시 남구 대명2동) 씨와 동네 친구 김모(26·대구시 남구 봉덕동) 씨가 시원한 생맥주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때가 때인 만큼 이들의 술안주는 당연히 월드컵이다. 월드컵 응원을 어디에서 하는가를 놓고 서로 아옹다옹하는 중이다. 권 씨는 범어네거리에 같이 가자며 김씨를 계속 설득한다. 그러면서도 실외에서 마시는 술 예찬은 빠트리지 않는다.
그는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 밤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서 동네 친구를 불러냈다."고 말했다. 이런 날은 아무래도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생맥주를 한 잔 걸치는 것이 제격이란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실외에서의 맥주 한 잔은 떨칠 수 없는 유혹인가 보다. 바쁘게 지나가는 자동차와 행인의 행렬 사이로 이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오버랩'된다.
◇ 대구의 실외 먹을거리 골목
요즘은 어딜 가나 쉽게 실외 술판을 목격할 수 있다. 동네 호프집에서부터 시내 술집까지. 하지만 실외에서 즐기는 술맛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 맛인 법. 대규모 야외 주점들이 몰려있는 곳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구 도심에서 실외에서 술을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 골목을 소개한다.
▶서부정류장 막창골목, 복현오거리 막창골목-막창은 대구의 대표적인 술안주. 그런 만큼 막창 골목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복현오거리 막창골목과 서부정류장 막창골목이 이름난 막창골목. 경북대 뒤편 복현오거리 막창골목은 현재 30여 곳이 성업 중인데 대부분 간이 실외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다. 서부정류장 막창골목에도 현재 성업 중인 15곳 중 5곳이 실외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성구 상동 막창골목엔 대부분 지붕을 덮어 실외에서 즐기는 맛이 덜하다.
▶닭똥집 골목-대구시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내 골목. 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닭똥집 먹으러 이곳을 한 번쯤은 찾아봤을 것이다. 40여 곳이 성업 중인 이곳엔 30여 닭똥집에서 실외 식탁을 벌여놓고 있다. 시장 안 골목 전체가 하나의 길거리 식당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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