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6월이 어느덧 숨을 고르는 말미에 이르렀다. 4년 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 국민이 단잠도 마다하고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호국·보훈의 달도 끝나가려 한다.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사는 모두 축구에만 쏠려 있었을 뿐 56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비극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을 달랠길 없었다.

모든 언론의 기사가 월드컵에 대한 분석으로 가득할 때, 6월 25일 신문의 한 면을 조그맣게 차지한 한 보도는 역사를 잊어가는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한 듯하여 몹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6·25 당시 사망자의 단 1%만이 신원이 확인되었을 뿐 아직도 많은 유해가 발굴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만년필이라도 가족의 품에 안기는 감동적인 재회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의견도 함께였다.

월드컵 기간 중에,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다는 뉴스도 연일 보도되었지만 이 또한 월드컵의 열기에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있었던 제56주년 6·25전쟁기념식에는 백발이 성성한 참전 노병들과 전쟁 미망인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월드컵을 응원하는 열정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는 냉철한 현실로 돌아와 모두가 제자리를 새롭게 정리해야 할 시기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상대적 가치관이 난무하는 현대에서는, 바른 역사를 토대로 한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수립하여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가 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5전쟁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고난과 극복의 역사는 다만 과거의 사실로만 치부될 것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 가치와 가치를 넘어서 영원히 존중받는 이정표가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풍요로움의 근본을 확립하여 다시는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전 국민의 공통분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생김새가 다르고, 배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번 월드컵 때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대한민국을 연호한 가슴 속 뜨거움이 우리 국민 모두의 신명이요, 민족정신일 것이다. 지금의 세대는 더 이상 말뿐인 리더를 따르지 않는다.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정립하면 과거의 순국선열들이 그러하였듯이, 개인의 안녕보다 국가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세대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오늘을 물려주기 위하여 산화하신 순국선열의 높은 뜻을 기려 후대에 전함으로써 온전한 가치관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토대 위에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세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힘을 북돋워야 할 때다.

어느샌가 월드컵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호국·보훈의 달도 끝나가려 한다. 잊혀진 애국지사, 노쇠한 참전용사의 모습을 되새겨 볼 여유도 없이 뜨거운 여름이 이어지려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땅에서 산화한 이름없는 호국영령들의 넋이 후손을 지키고, 그 선혈이 우리의 혈관 속에도 맥박치고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선열들의 희생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용수 대구보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