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인오락에 미친 사람들…대박 환상에 자리 못떠

지난 19일 오후 11시 대구 달서구의 성인오락실 바다이야기.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니터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릴'을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아휴, 아깝네, 아까워", "왜 이렇게 안 터지는 거야!"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누군가 아쉽게 '대박'을 놓친 모양. 한 40대 남성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수십 장의 현금을 오락기 투입구에 집어 넣었고 상품권 수십 장을 손에 쥔 채 여러 대의 오락기를 동시에 조작하는 중년 남성도 눈에 띄었다.

김모(28·대구 달서구 두류동) 씨도 한창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담배 꽁초로 가득한 지저분한 재떨이는 김 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는지를 가늠하게 했다. 김 씨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있었고 며칠째 면도를 하지 못한 얼굴은 얼기설기 난 수염으로 덥수룩했다.

"저라고 터지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김 씨는 연신 담뱃대를 물었다. 모니터에 '예시'가 뜰 때마다 김 씨는 "나도 된다니까." 중얼거리며 만원 권을 투입했다. '예시'는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도달이 가능한 점수를 보여주는 일종의 '미리보기'. 게임기에 고래가 느리게 지나가거나 바다 속에 갑자기 어둠이 깃들면 곧이어 '잭팟'이 터진다는 뜻이다.

특히 잭팟이 연속으로 터질 경우(연타) 최대 25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 '대박환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셈. 이 오락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법정 경품 한도액인 2만 원을 넘어 수백만 원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예시'와 '연타' 기능이 있기 때문. 김 씨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예시가 250점이지 않습니까? 오늘 대박 난다니까요." 하지만 예시는 예시일 뿐. 김 씨의 바람과는 달리 '대박'은 터지지 않았고 김 씨는 몇 시간이 더 지나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넣은 뒤에야 허탈한 표정으로 게임장을 나섰다.

김 씨가 성인오락에 빠진 건 불과 두 달 전. 친구와 함께 호기심에 찾았던 '바다이야기'는 김 씨의 인생을 완전히 부숴놓았다. 방위산업체와 퀵 서비스를 하며 모았던 1천200만 원도 모두 날렸다. 한 달 전부터는 아예 5년간 다녔던 퀵서비스 회사도 그만두고 오락실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김 씨는 "잘 터질 때는 수십만 원 씩 손에 쥐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더 큰 대박을 노리다가 빈손으로 나서기 일쑤"라며 "이젠 돈을 더 구할 곳도 없고 대박 생각에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성인오락실 광풍에 가정도 흔들리고 있다. 김모(34·여·대구 달서구 죽전동) 씨는 '바다이야기'에 빠져 버린 남편 탓에 하루하루 한숨으로 보내고 있다. 김 씨는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성인 오락에 매달리는 남편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말했다.

남편이 성인오락에 매달린 지 불과 한 달 만에 집 한칸 마련하겠다며 알뜰살뜰 모아 놓은 적금과 전세금까지 모두 날려 버렸다는 것. 결국 김 씨는 남편과 별거를 하고 지난 주부터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네 살배기 아이는 기를 형편조차 못돼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놨다고 했다. 김 씨는 "부모님과 일가 친척 모두 달려들어 남편을 말려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정부는 도대체 몇 사람의 인생을 도탄에 빠뜨려야 만족하겠냐."며 울먹였다.

이와 관련, 영남대 백승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오락실이 독버섯처럼 빨리 번져 나간 데는 친숙한 간판으로 성인오락에 대한 경계심을 없앤 점과 높은 사행성이 주된 이유"라며 "그러나 충분히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허가를 내주는 등 성인오락실 번성을 조장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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