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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장편 '아우라지 가는 길' 개정판 출간

'분단 문학'·'실존과 역사'·'기억의 굴레'·'이데올로기' 등의 수식어가 관용구처럼 따라붙었던 작가 김원일(64)이 조직폭력의 암투를 배경으로 꽃피운 문학의 색다른 진경산수. '아우라지 가는 길'은 일견 김원일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조직폭력'의 세계와 '정선 아우라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한 '아우라지 가는 길'은 1996년에 발간한 2권 짜리 '아우라지로 가는 길'에서 178쪽을 덜어낸 한 권짜리. 개정판 '아우라지 가는 길'은 "초판본 제목 '아우라지로 가는 길'에서 한 글자를 뺐듯, 4할 가량 가지를 쳐냈으나 줄거리는 손보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주제 의식과 메시지 등은 고스란히 살려둔 채 군더더기를 '아깝다 싶을 정도로' 과감히 쳐낸 것이다.

사건의 진행이 빨라진 만큼 읽는 재미가 커졌으며,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문장들은 더 오롯해졌다. 올해는 특히 작가 김원일이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40년이 되는 해여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장편 '아우라지 가는 길'은 1998년 제3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사이사이에 드라마 '모래시계'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 90년대의 세태를 직접적으로 그려내는 등 소재나 기법 면에서 변모된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아우라지 가는 길'은 이처럼 자폐 청년인 '마시우'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는 장편이다. 이 작품은 문장이 짧고 힘 있게 끊기며 이어지는 단문의 형식을 보여주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문체는 자폐아로 버림받아 헤매는 저 밑바닥 삶으로부터 마침내 오염된 모든 것을 일소하는 주인공 시우의 단순하면서도 빛나는 영혼을 여실히 드러낸다.

주인공 시우는 어쩔 수 없이 폭력과 암투, 인권 유린과 퇴폐적 일상으로 범벅된 뒷골목에 거주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정선 아우라지'를 그리며, 생태학자였지만 전교조 활동에 따른 좌절로 짧은 생을 마감했던 아버지의 말씀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여실한 삶의 모습들이, 혼자서는 고향을 찾아갈 수조차 없는 자폐 청년의 머릿속을 감돌아 풀려지면서 씁쓸한 자조를 느끼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가 선과 악의 구분이 어려울 만큼 혼탁한 세상이 되었으며, 그 오염된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의지조차 상실한 듯 보이는 우리의 양심을 향해 작가는 펜 끝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원일은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고단한 삶은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며 "조직폭력 세계의 하수인이었던 주인공을 그가 자란 자연의 세계로 되돌려놓는 것은, 정선 아우라지야말로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떠나온 원초적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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