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똘이의 추석 일기

우리 외삼촌은 원래 두 명입니다.

큰외삼촌 이름은 일식이고 작은 외삼촌 이름은 이식입니다. 일식이 외삼촌은 미국 뉴욕에 사시는데, 해마다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카드를 보내주셔서 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게 만드십니다. 이식이 외삼촌은 독일 뮨헨에 사십니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 했다는 이식이 외삼촌은, 내가 시험지를 받아올 때마다 듣는 어머니 잔소리 속에 꼭꼭 등장하지만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올 추석을 지내면서 외삼촌이 한 명 더 생겼습니다.

추석날, 우리 식구들은 범어동 큰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외갓집이 있는 금릉을 향해 나섰습니다. 11시쯤 출발했는데 북대구 인터체인지에 들어서면서부터 차가 밀렸습니다. 거북이보다도 더 느리게 엉금엉금 기어가던 차는 꼬박 6시간이나 지난 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골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외갓집 지붕위로 산그늘이 두껍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떼 지어 몰려드는 땅거미가 집안을 어둠과 적막함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뛰어내린 저와 동생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하고 외치며 안으로 들어가자, 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서 초저녁별 하나 깜짝 눈을 뜨고, 어둑어둑한 헛간에서 외할아버지가 큰 개를 데리고 그림자처럼 천천히 걸어 나오셨습니다. 외할머니도 부엌문을 열고 앞니가 다 빠진 얼굴에다 함빡 웃음을 만들며 맞아주셨습니다.

우리 식구는 방에 들어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한테 큰절을 올리고 윗목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는 '너희는 외삼촌한테 따로 큰절을 올려야지.' 하시면서 옆에 앉아 있던 송아지만한 개를 쓰다듬으셨습니다. 동생과 나는 어리둥절하여 아버지 어머니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두 늙은이와 함께 삼시 세끼 밥 끓여먹고 사는 녀석도, 논두렁 밭두렁길뿐만 아니라 읍내 시장길에 앞장서는 녀석도, 추석 성묫길에 따라 나서는 녀석도 이 삼식이 뿐이니, 이 삼식이 녀석을 아들 삼기로 했다. 앞으로 잘 모시도록 해라."

껄껄껄 웃으시며, 외할아버지가 재촉하시는 바람에 동생과 나는 얼떨결에 그 개한테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니 삼식이 외삼촌한테 첫인사를 드렸습니다. 멀뚱멀뚱 우리를 쳐다보는 삼식이 외삼촌을 앞에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외삼촌은 이제 세 명입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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